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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3] 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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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3] 감자

 

마늘 캘 무렵이면 감자도 캔다. 우리 집은 노란감자하고 자주감자를 심었다. 땅미 재 너머 간지밭 금서 도빠골 진밧골에 논깃새에 돌아가며 심는다. 밭을 쪼개 고추 몇 줄 감자 몇 줄 심는데 감자는 다섯 고랑이나 세 고랑쯤 심었다. 어느 해는 진갓골에 감자를 많이 놓았다. 감자밭이 멀어서 캐는 일을 잘 거들지 못했다. 감자는 다섯 상자나 세 상자가 나왔다. 아버지가 지게 발에 감자를 담고 나른다. 마늘을 걸어 둔 가게 그늘에 감자를 말린다. 나는 큰오빠 다음으로 밭일을 하지 않고 감자를 삶아 들로 밭으로 갖다 주는 일을 맡았다. 마늘 가게 밑에 기어들어가 내가 까기 쉬운 감자만 골랐다. 껍질이 시들지 않은 까끌까끌한 감자가 껍질이 잘 벗겨진다. 떫은맛이 나는 자주감자도 깎는다.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샘에 걸터앉아 숟가락으로 쓱쓱 긁는다. 자주감자는 눈이 많아 눈을 후벼파도 잘 안 빠진다. 껍질도 잘 벗겨지지 않아 나중에는 자주감자만 남았다. 감자 깎는 칼이라곤 부엌칼과 숟가락이니 긁다가 내 손바닥을 긁기도 한다. 열두 살 어린 손으로 감자를 고르고 깎기는 벅찼지만 애어른 따지지 않고 일손을 거든다. 감자를 깎은 껍질과 흙물은 거름에 쏟아붓고 물에 헹군 뒤 가마솥에 넣고 불을 땐다. 어머니가 알려준 대로 소금하고 삼성당으로 간을 맞추었다. 헌 공책이나 일력을 뜯어 뭉쳐서 불을 붙이고 솔가지를 넣고 입김을 불어 불을 붙인다. 할아버지 드실 감자를 한 그릇 따로 담고 큰 양푼이에 담는다. 솥에 물을 한 바가지 붓고 수세미로 닦은 뒤 바가지로 물을 퍼내고 행주고 물기를 닦아내었다. 감자를 보자기에 싸서 산을 하나 넘고 밭에 닿으면 어머니 아버지는 감자 잘 삶아 타박타박하다고 한다. 어머니 아버지는 쉬지도 않고 일하고 새참을 갖고 오기를 기다린다는 생각에 그 먼 멧허리를 걸어가는 길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감자로 찌개하고 볶고 삶아서 물리도록 먹는다. 캄캄한 땅속에서 알알이 잘 영글어 주렁주렁 달고 나온 감자는 저를 먹으면서 둥글둥글하게 타박하게 살기를 바라겠지.

 

2021. 08. 0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