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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5] 느릅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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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5] 느릅나무

 

숙이네 가는 길 가운데쯤에 언덕이 있고 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그곳을 지나갈 적이면 냅다 뛰었다. 나보다는 숙이가 많이 뛴다. 나는 언덕을 지나 우물가에 사는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집에 올 적에 뛰고 숙이는 장골 끝 집이라 언덕을 지나는 일이 더 많다. 어린 날 마을에 티브이가 한 대 있었다. 나무 상자에 채널을 돌리는 흑백티브이다. 연속극을 보려고 장골 목골 이골 사람이 몰려왔다. 나는 우리 골목만 틀면 바로 앞집이라 가장 가까웠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아이 어른이 함께 보았다. 집으로 올 무렵이면 어두워서 코앞이 집인 나도 무서운데 언덕을 지나는 숙이는 얼마나 무서울까. 그 언덕에서 개오지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흙을 뿌린다는 말이 온마을에 돌았다. 나는 개오지가 맷돼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그 길만 지나가면 여우 눈을 떠올리고 늑대 눈이 떠오르고 티브이에서 보던 무서운 얼굴이 떠올랐다. 밤이면 무섭지만, 낮에는 그 나무 뒷산에서 소꿉을 하고 놀았다. 명자꽃이 울타리로 곱게 피었다. 명자꽃을 우리는 ‘앤지꽃’이라 했다. 아이들이 밤늦게 다니지 말라는 헛소문일 텐데 티브이에서 본 ‘전설의 고향’ 드라마를 보았기에 더 무서웠다. 그 길이 모퉁이로 굽이지고 어두운 길도 한몫했다. 우리가 무서워하던 나무가 얼마나 억울할까. 속앓이를 했는지도 모른다. 이제 그 나무는 죽고 그 자리에 느릅나무가 산다. 물이 흐르던 개울을 덮어 길이 되고 이젠 오랜 날 그 언덕이 아니다. 어린 날에는 폭포처럼 느꼈다. 개오지 나무는 길이 꺾이는 자리에서 달려오다 잘못하면 개울에 빠진다고 말해 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무도 다 보고 듣고 자랄 텐데, 늘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 마음이 아팠을 테지. 이제는 느릅나무하고 뽕나무한테 자리를 내어주고 다른 삶으로 거듭나지 싶다.

 

2021. 08. 1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