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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6] 노루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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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6] 노루귀꽃

 

언덕 집에 살던 일곱여덟 살 적에 노루를 처음 보았다. 아버지가 장골에서 일할 적에 비틀거리며 올찮은 노루 머리를 때려서 잡았다. 한데 가게에 장대에 거꾸로 매달아 두고 다음날 거죽을 벗겨 고아먹었지 싶다. 노루를 먹은 이튿날, 간지밭에 일하던 어미 소를 따라온 송아지가 풀밭에서 잘 뛰어놀다가 갑자기 죽었다. 이때 노루를 잡으면 재수 없다고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노루를 잡던 언덕집에서 아픈 사람이 많았다. 어머니는 밥을 먹지 못하는데 어디 아픈지 알지 못해 미역국을 겨우 삼켰다. 아버지는 속이 아프고 병원 가던 길에 똥이 마려워 누니 똥에 거품이 나오고 거품이 몸에서 빠져나오자 병원 가다가 병이 다 나았다. 큰오빠는 사타리에 돌을 끼워 돌치기 놀이하다가 돌에 맞아 도랑에 떨어져서 다쳤다. 집하고 우리하고 안 맞아 자꾸 탈이 났지 싶은데 노루를 잡아 송아지까지 죽었으니 재수 없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쩌면 짝을 잃은 노루가 우리 송아지를 해코지했을까. 우리가 먹은 노루 귀를 닮았아서 노루귀꽃일까. 수줍은 듯한 꽃을 보니 노루도 참으로 얌전했을지 모른다. 재수 없다는 이름을 벗으려고 노루 귀를 닮았을까. 떨어진 가랑잎이며 이파리에 숨죽이다가 못다 핀 꽃을 천천히 피우는지 모른다.

 

2021. 08. 1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