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1] 담금주
열두 살 적에 아버지가 안방 앞 처마 밑에 땅을 파고 병을 묻었다. 어머니가 간지밭에 고추 따러 가다가 길에서 뱀 한 마리를 만났다. 어머니는 손에 든 괭이로 꽁지를 누르고 끈으로 묶어서 비료 자루에 담아 왔다. 어머니는 독이 없는 뱀을 알고 잡았다. 병에 넣어 술을 붓고 뚜껑을 막은 다음 밭에 묻거나 비 안 맞는 자리에 묻는다는 마을 사람들 말을 듣고 아버지는 가까운 처마 밑에 묻었다. 뱀을 묻은 자리가 뜨락 앞이라 신발을 벗는 자리이다. 뜨락에 올라 댓돌을 밟고 문턱을 넘고 들어간다. 마루를 놓아둘 적에는 마루 밑에 뱀술이 있는 셈이다. 늘 누가 밟는 자리에 묻었다. 한참 지나 땅을 파고 병을 꺼냈다. 물이 빠져서 뱀이 하얗다. 장골 오두막에 살 적에 아버지가 자꾸 아팠다. 볕이 잘 드는 넓은 집으로 옮겨서 몸에 좋은 술을 먹는다. 쥐코밥상 맡에 앉아 한 모금씩 마신다. 아버지는 집 뒤쪽에서 지네를 잡아 실에 묶어서 오줌장군 오줌에 하룻밤을 담근다. 지네는 말리고 구워서 가루를 내어 술에 타서 마셨다. 아버지는 뭐라도 술에 타서 술술 마셨다. 뱀은 술을 무서워하고 지네는 우리 오줌에 꼼짝 못했네. 술은 오래되면 독도 모두 녹여서 몸을 살리니 참으로 놀랍다. 뱀아 지네야 그때 우리 아버지 약이 되어 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구나.
2021. 08. 2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