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7] 솜꽃
어릴 적에 우리 집은 한 이불을 덮고 잤다. 여름에는 마루와 멍석으로 흩어 자지만 겨울이면 군불을 넣고 한곳에서 바닥에 이불도 깔지 않고 두꺼운 이불 하나를 덮었다. 중학생인 작은오빠, 나, 동생, 어머니 아버지 이렇게 다섯이 덮었다. 이른 저녁에는 바닥이 따뜻하고 뜨겁지만, 새벽이 되면 구들이 식어서 몸을 움츠리며 서로 등 뒤에 딱 붙어서 갈치잠을 잔다. 누구 하나 몸을 들썩이면 찬바람이 들어왔다. 우리는 몸을 붙여 자서 이불하고 사람 기운으로 따뜻해서 바닥이 딱딱해도 잠을 잘 잤다. 그런데 우리 이불은 다섯 사람이 덮어서 아주 크고 무겁다. 이불 홑청을 베로 풀을 먹여서 다듬이질에 방망이질을 했다. 베도 무겁지만, 이불에 든 솜도 무겁다. 우리 집은 솜을 조금 심은 적이 있다. 탑리에서 솜씨를 받아서 심는 집도 있지만, 우리 어머니는 밍(명)타는 집에서 뺀 솜씨를 얻어서 밭에 심었다. 초롱처럼 생긴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지면 솜 다래가 열린다. 솜 생길 적에 메아리 따서 먹었다. 바알간 다래는 풀내가 나도 먹을 만했다. 그렇지만 나는 잘 안 먹었다. 이 다래가 익어 다래꽃이 피었다. 찬바람이 불면 가시가 송송 난 밤이 쩍 벌어지 듯 딱딱한 다래가 쩍 벌어졌다. 허옇게 벌어지면 다래를 밍(명)딴다. 손으로 쏙쏙 뽑듯 솜을 꺼냈다. 솜은 부드럽지만, 나무와 다래가 말라 딱딱했다. 솜을 뽑는 일이 재밌었다. 어머니는 솜으로 명을 타는데 씨를 빼는 집에 갖고 갔다. 솜을 길게 빼서 접고 접어서 우리가 덮을 이불 크기를 맞추어 이불 겉을 지어주었다. 어머니는 집에 와서 솜을 더 넣었다. 이불을 펼치면 바닥에 꽉 찼다. 큰 바늘로 베를 시침했다. 이렇게 지은 이불을 큰오빠가 혼자 지낼 적에 어머니가 지어 주고 내가 시집올 적에 보랏빛 호칭으로 어머니가 지어 주었다. 솜을 키워서 이불 석 채를 지은 셈이다. 쩍 벌어진 다래에 하얀 솜은 하늘에서 보던 구름 같았다. 씨앗을 덮은 하얀 솜은 우리한테는 구름처럼 부드러운 이불이 되어 주었네. 내가 다래를 따먹어도 따뜻하게 덮어 주려고 꽃이 얼마나 애쓰며 피었을까. 꽃이 진 자리에 딱딱한 열매를 보듬으려고 보드라운 솜이 되다니 고맙고 놀랍다. 딱딱한 곳에 부드러운 속살이 있었다. .
2021. 08. 2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