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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9] 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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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59] 삐비

 

오빳골 지름길 무덤 앞에서 삐비를 뽑아 먹었다. 우리는 ‘삐삐’라 했다. 겨울 바람이 봄바람으로 바뀔 무렵이면 잔디보다 조금 큰 풀에 자주빛 새싹이 가운데에 올라온다. 끝이 뾰족하게 돌돌 말린 새싹을 잡고 당기면 삐 소리가 나고 드르륵 덜컹 뿌드득 하며 촉촉한 풀이 스치는 소리를 내며 뽑힌다. 보드라운 새싹을 잡고 당기면 내 손이 작게 울린다. 삐삐를 막 뽑으면 촉촉하다. 돌돌 말린 새싹이 풀어지면 부피가 크다. 높이 들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입에 넣으면 보드라이 혀에 감기고 씹을 틈 없이 부드럽게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어릴 적에 말괄량이 삐삐 만화를 본 탓일까. 삐 하고 삐삐가 빠지는 소리로 붙여진 이름인지 모른다. 보드랍던 삐삐가 조금 더 자라면 하얗게 핀다. 우리는 하얗게 피어도 뽑아 먹었다. 핀 잎은 말라 털 같다. 마른 잎은 물이 많던 어린 삐삐하고 다르게 입에 달라붙어 목이 막혔다. 마른 삐삐도 한 입씩 따먹는다. 마른 삐삐는 침을 다 빨아들여 침을 모아 씹는다. 삐삐는 보랏빛 싹으로 올라올 적에 가장 달고 더 자라면 거칠고 씨앗을 맺어 먹지 않아 무덤가는 우리가 빠트린 삐삐로 하얀 풀밭이 되지만, 우리는 새싹이 올라오면 날름 뽑아 먹고 우리가 쏙 뽑아 손에 모아 가면서 먹어도 씨앗을 남긴다. 풀이 더 자라면 낫으로 베어 소한테 나눈다. 삐삐는 재를 넘고 다니는 우리 주려고 피어나 먹을 적에는 넓고 푸른 하늘을 더 쳐다보라 했으려나. 삐삐를 먹으려면 저절로 하늘을 올려다본다. 삐삐가 이러기를 바라는구나 싶다.

 

2021. 08. 3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