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0] 타래붓꽃
어린 날에 본 타래붓꽃은 범부채 풀잎보다 좁고 길쭉하다. 빛깔이 푸르고 속대를 뽑으면 원추리 밑둥처럼 옅은 풀빛이다. 가느다란 풀잎 속대를 뽑고 속대 하나를 더 빼낸다. 속대를 빼면 풀잎 속이 비고 속대가 빠지면서 이파리 끝은 늘어진 옷처럼 구불구불하고 보드랍고 얇다. 아랫입술에 살짝 얹고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넣으면 붙은 풀 틈으로 바람이 들어가 곱게 풀피리 소리가 울린다. 풀피리 소리가 맑고 부는 일이 재밌어 강아지풀잎도 따다 불고 잎이 넓은 풀잎을 따다가 불었다. 그 가운데 가장 고운 소리를 내는 풀피리는 타래붓꽃이었다. 타래붓꽃은 오빳골 오르막 길가에 한군데 뭉쳐 자랐다. 지름길 길섶에 무덤이 있어 무섭지만, 둘레에는 먹는 풀이 많고 놀이할 질긴 풀도 많고 노래를 배울 가락틀(악기) 같은 풀이 자라는 곳이다. 흙이 파여도 그곳에 자라는 풀은 늘 우리 눈길을 끌려고 애썼다. 겹겹이 있는 잎을 뽑았다. 입을 살짝 벌리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고운 소리로 풀피리가 되어 주었다. 소리가 얼마나 고운지 풀잎이 하늘거리며 부딪치며 바람에 떨리듯 울린다. 바람이 긴 풀대에 뽑히면서 소리를 울린다. 이 풀피리를 잘 불어서 피리를 잘 불렸는지, 피리를 잘 불어서 풀피리를 불렸는지 모르지만, 피리를 막 불다가, 이 풀피리로 소릿길(음계)을 하나씩 짚고 피리로는 언제나〈고향의 봄〉을 불었다. 입바람에 간지러워 웃는 소리일까. 내 입에 닿아 몸속 기운을 소리 낼까. 풀하고 나하고 함께 부는 피리. 타래붓꽃은 노래 부르는 풀, 내 몸이 모아 주는 입김에 고운소리로 마주하는 풀이라고 생각해 본다.
2021. 08. 3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