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2] 도라지꽃
배움터에서 돌아오는 길이 멀어 달리기를 하고 길에 앉아 돌줍기를 하고 솔밭에 앉아 쉬고 또 달리면 어느 사이 오빠골 재 밑에 닿는다. 멧자락 따라 재 밑에 오면 느긋하게 놀았다. 아직 집이 멀어도 이 자리만 오면 집에 다 온 듯하다. 찔레가 있는 멧기슭 높은 밭둑에 도라지밭이 한 군데 있었다. 멧자락 밭둑이 높고 미끄럽다. 신발이 푹푹 빠져 흙이 들어가도 끙끙대며 풀을 잡고 밭에 오른다. 길가에서 본 보랏빛 도라지꽃이 가득했다. 우리는 밭에 오르면 한 골씩 맡아 꽃봉오리를 찾는다. 서로 터트리려고 이랑을 넘나드느라 도라지가 넘어지고 밭이 엉망이 된다. 도라지꽃은 풍선껌을 불어서 붙여놓은 듯 바람이 빵빵하게 찼다. 두 손으로 꼭 누르면 뽕뽕 소리를 내며 터진다. 어떤 봉오리는 픽 하고 바람이 실실 빠진다. 꽃봉오리를 터트리면 크기마다 바람이 빵빵한 세기에 따라 실로폰을 톡톡 두드리는 듯하다. 이쪽에 큰 봉오리 저쪽에 작은 봉오리 쪼끄마한 봉오리를 마구잡이로 터트렸다. 이랑을 옮기느라 춤추고 터트린다고 우리 몸짓은 춤춘다. 봉오리가 터진 도라지꽃은 하하 웃는 듯하고 아이들은 신이 났다. 도라지 실로폰으로 노래를 하는 듯했다. 꽃잎을 다물어도 우리 눈에 띄면 입을 안 벌리고는 못 배긴다. 꽃봉오리는 천천히 곱게 활짝 피우고 싶을 텐데, 우리는 꽃을 비틀고 도라지가 깨어나기도 앞서 미리 터트려 꽃길을 억지로 열었다. 그런데 도라지는 개구쟁이인 우리가 오도록 기다렸는지 모른다. 도라지도 좋아서 빵빵 소리 내어 웃고 큰 망우리를 만나면 더 크게 웃음소리를 냈다. 우리가 춤추며 도라지꽃하고 노는 사이 뿌리도 들썩이며 땅속에서 잘 자라겠지. 도라지는 바람을 잔뜩 물고 춤과 노래를 알린다.
2021. 09.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