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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5] 박주가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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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65] 박주가리꽃

 

어린 날에 다니던 마을 앞산 길이 막혔다. 밭으로 내려오니 멧돼지가 내려오지 못하게 그물 담을 쳐서 멧자락을 다 막았다. 풀밭을 밟고 되돌아가다가 박주가리를 둘 만났다. 박주가리가 뒤늦게 영글었는지 풀빛이 도는 작은 열매이다. 껍질이 오돌토돌하고 앞머리는 도톰하고 끝은 가늘다. 눈썹을 닮았다. 덤불에 손을 넣어 박주가리를 하나 땄다. 알이 꽉 차서 부른 배가 벌어졌다. 그 틈을 엄지손으로 벌렸다. 고치처럼 하얀 속에 박주가리 씨앗이 들었다. 촘촘한 깃털로 모였다. 깃털 끝에는 마른 고추씨앗처럼 납작한 씨앗이 붙어 성냥개비를 닮았다. 손으로 조금 떼어내니 빈틈없이 붙은 얇은 알맹이가 미끄러졌다. 몇 집어 씹었다. 깃털이 촉촉해서 입에 넣으면 살살 감친다. 알갱이를 씹으면 겨울에 내리는 눈을 밟는 소리가 뽀드득 난다. 어린 날에 덜 익은 박주가리도 따먹었다. 누렇게 익을 적에 따거나 쩍 벌어지면 하얀 깃털이 마른다. 우리는 바람이 불면 솜털을 날렸다. 하얀 깃털이 햇살에 반짝였다. 박주가리는 껍데기만 터지기를 기다리면서 바람을 맞고 싶었겠지. 메 너머 마을이 궁금할 테고. 촉촉한 깃털은 미끄럼틀 타기를 좋아하나. 내 손바닥을 빠져나간다. 솜털은 씨앗 하나씩 달고 바람에 나붓이 낯선 땅에 날아갔지 싶다. 또 한 철 지나 날아서 다른 숲으로 길을 나설 테지. 박주가리는 한 철 뿌리 내어 애써 맺은 열매를 우리한테 주고 우리 몸을 빌려 멀리 보냈을지 모른다. 바람에 멀리 날아가며 놀았던 박주가리, 박주가리하고 박은 무엇이 닮았을까. 생각해 보면 우리 어머니도 박씨이네.

 

2021. 09. 12.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