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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0] 벼바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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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0] 벼바심

 

어린 모가 여름갈 비바람을 견디고 가을해에 알알이 여물면 벼를 벤다. 요즘은 큼직하고 반듯한 논에 콤바인이 들어갈 길만 낫으로 가돌림 하면 기계가 베고 바심을 하지만, 내가 어릴 적에는 낫으로 했다. 낫을 한 자루씩 들고 줄을 지어 한둘씩 잡고 힘껏 당겼다. 논바닥에 널어놓은 벼를 두 손에 잡힐 만큼 묶어서 수레로 나르고 앞마당에 무더기로 쌓았다. 아랫방 앞에 탈곡기를 놓고 어머니 아버지는 발로 굴리면서 볏단 하나씩 잡고 이리저리 돌리고 펼쳐 돌리며 쓱쓱 문대면 알이 떨어진다. 우리는 두 쪽에 서서 볏단을 하나씩 건네주고 떨어지면 문 앞에 쌓아 둔 벼를 오빠나 아버지가 옮긴다. 벼를 턴 만큼 어머니 아버지 뒤에는 짚이 가득 쌓였다. 아버지가 틀을 잡아 주면 우리는 짚을 마늘가게 앞으로 옮겼다. 오빠하고 나도 탈곡기를 발로 밟아 바심하면 밟는 힘이 여러 볏집이 둘둘 감기고 손이 딸려갔다. 아주 아슬했다. 둥근 머릿빗에 머리칼이 가득 감기듯 기계에 감긴 짚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모터가 들어오고 전기로 돌리다가 다시 경운기가 들어오고는 탈곡기를 경운기 피댓줄(벨트)이 벗겨지지 않도록 똑바로 끼우고 판에 볏단을 올리면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겨끔내기로 볏단을 풀어서 나란히 밀어넣었다. 낱알하고 짚을 갈라 주었다. 한쪽이 털리면 다른 한쪽 자루에 낱알을 채우고 뿍대기(벼부스러기)는 굴뚝으로 뿜어 나왔다. 뿍대기는 소마굿간에 깔아 주고 소도 따뜻하게 지냈다. 자루에 담은 낱알을 풍로에 쏟아부어 가운데가 쑥 내려가게 밀어주면서 손잡이를 돌려 바람으로 짚 찌꺼기를 거름에 날렸다. 멍석에 널고 까꾸리로 고르고 우리는 맨발로 발을 떼지 않고 줄지어 골을 타며 벼를 뒤집었다. 타작을 하는 날에는 참새떼도 모여든다. 온마당에 벼가 있고 방문 앞에는 쌓아 놓은 볏단이 짚단으로 바뀐다. 벼바심은 바람도 거든다. 바람이 부는 쪽으로 굴뚝을 놓으면 뿍대기가 일하는 쪽에 오지 않았다. 바심해도 버릴 것 하나 없다. 알은 우리가 먹고 짚은 지붕을 엮고 볏섬을 짜고 멍석을 짜고 새끼줄을 꼬고 썰어서 소한테도 먹이고 겨울 비닐집 고추도 덮고 마늘논에도 덮어 주고 불쏘시개로도 쓴다. 나는 낫질이 서툴러 무서웠다. 탈곡기에 지푸라기가 끼여 딸려 갈 적에도 무서웠다. 맨손으로 벼를 만져 까끌까끌했다. 쌀밥이 되기까지 해와 비와 바람이 수고하고 애어른 손길을 닿고서야 찾아오는 쌀로 하얗게 밥을 지어서 먹는다. 한 톨 밥알을 버리지 못하는 까닭인지 모른다.

 

2021. 09. 3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