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3] 호박꽃
호박꽃이 떨어지고 호박이 둥글게 여문다. 어머니는 호박씨는 곡식을 심는 밭에 뿌리지 않고 밭둑에 심었다. 풀을 뽑고 씨앗이나 어린싹을 심고 물을 준 뒤 동그랗게 비닐을 씌웠다. 싹이 자라서 비닐을 걷어내면 밭둑으로 덩굴이 뻗는다. 잎이 우거지고 줄기에 까칠한 털이 있다. 밭일 들일 하고 어린 호박을 따왔다. 호박은 누렇게 익을 때까지 따먹는다. 어린 호박일수록 겉이 매끈하고 속에 씨가 여물지 않아 볶고 찌개로 끓였다. 수제비하고 국수에도 호박을 넣었다. 어머니 아버지는 호박국을 맛있게 먹는데 나는 호박국이 맛이 없었다. 하나씩 따먹어도 누런 호박이 많아 아버지는 지게에 짊어지고 온다. 누런 호박은 윗목 구석에 두었다. 호박은 자리를 옮기면 썪는다고 한자리에 쌓아 놓고 하나씩 긁는다. 아버지가 납작한 쇠를 주름잡아 긁개를 만들어 주면 어머니하고 나는 호박을 긁었다. 호박씨는 걷어서 종이에 널고 물컹한 털을 숟가락으로 긁어낸 다음 긁개로 긁는다. 날카로운 긁개 구멍으로 호박이 길쭉하게 쭉쭉 나왔다. 무를 채 썰어 놓은 듯 쌓였다. 어머니는 밀가루를 반죽해서 호박을 섞어 부침을 해주었다. 노릿하게 익으면 달콤했다. 어머니는 남은 호박을 가마솥에 넣어 삶고 저어서 밀가루를 풀고 고구마를 넣고 강낭콩을 넣어 범벅을 했다. 어머니 아버지는 범벅도 맛있게 잘 드신다. 그렇지만 나는 덩어리진 호박이 싫어서 골라내고 먹었다. 어른이 되니 어머니처럼 호박죽을 쑨다. 호박을 갈고 밀가루 아닌 찹쌀가루를 넣고 콩 아닌 팥을 넣고 설탕과 소금으로 간을 맞추었다. 내가 쑨 호박죽은 어머니가 쑨 호박죽보다 맛이 낫다. 싫어하던 호박이 좋다니. 입맛이란 얄궂다. 호박꽃에 나비도 앉고 노랑빛도 예쁘기만 한데 뭇사람은 ‘호박꽃도 꽃이가’ 하며 꺼린다. 잎을 한 겹 벗기고 쪄서 끓인 된장으로 쌈을 먹고 더울 때와 추울 적에 우리 배를 불려 주고도 못난이 소리만 듣네. 꽃이 커서 그러나. 납작하고 예쁘게 잘 익은 호박도 있는데, 울퉁불퉁하게 익은 겉모습 때문에 못난이로 살아가는 마음은 어떨까. 호박꽃아, 온누리에는 예쁘지 않은 꽃이란 없단다. 마음 풀자구나.
2021. 10. 0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