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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4] 산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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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4] 산수유

 

우리 마을에는 산수유나무가 많다. 요즘은 사월이면 아랫마을에서 잔치한다. 우리 마을에서 아랫마을까지 내를 따라 논둑마다 산수유가 자란다. 중학교 가기 앞서는 우리 산수유나무가 없었다. 구천할매네와 순이네는 산수유가 많았다. 우리 어머니는 두 집 산수를 따면서 흘린 열매를 비스듬한 논둑에서 줍고 냇가에 내려가서 주웠다. 재 너머 효선마을에서 냇물을 막은 보가 있었다. 그 물로 큰물을 막아서 밑으로 흐르는 물이 적은 중보뜰에 들어가서 많이 주웠다. 불래마을 내도 둑을 막아 흐르는 물이 없어서 산수를 쉽게 주워냈다. 하루에 두 되 줍거나 날마다 조금씩 줍고 까고 나무를 찾아다니면서 남은 열매를 땄다. 그렇게 모아 온 산수유를 온 집안이 모여 깠다. 우리가 주운 산수유를 다 까면 어머니는 구천할매네 산수유를 한 말씩 갖고 와서 집에서 까고 우리는 순이네 집에 가서 산수유를 깠다. 큰방 작은방 마루마다 아이들이 밥상맡에 앉으면 순이 어머니는 반 되나 한 되씩 아이들이 달라는 만큼 우리 앞에 쏟아붓는다. 수북하게 작은 산이 된 산수유를 하나씩 집어서 씨앗을 뺐다. 앞니로 산수유 끝을 깨물어 터트리고 꽁지 잡은 손을 꾹 누르면서 밀면 씨앗이 입속으로 빠진다. 씨앗에 붙은 살을 침을 모아 꿀꺽 삼키고 씨앗을 그릇에 뱉았다. 산수 껍데기는 우리 손자국에 꾹 눌러 길쭉하던 알이 둥글납작하다. 두 손을 번갈아 가면서 씨앗을 뺐다. 한 되 산수는 좀처럼 줄지 않는다. 작은 알을 하나씩 집어 반쯤 바수고 나면 순이 어머니는 새참으로 사과를 준다. 밤늦도록 산수유를 깠다. 한 되에 육백 원씩을 받았다. 동생하고 며칠을 까서 모은 천 칠백 원으로 추운 겨울 어머니 생신 선물로 점방에서 과자를 사서 어두운 밤길을 신나게 뛰어왔다. 그때 산수유가 많던 집이나 못 살던 우리 집이나 요즘은 살림살이가 비슷하다. 한 자리에서는 못 살았으니 이 자리에서는 잘 살도록 고른 일일까. 잘 사는 사람은 그대로 제자리걸음이지만 우리는 워낙 못 살아 힘내어 빨리 따라붙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산수유 씨앗은 밭에서 거름이 되고 아궁이에 넣고 군불로 때면 파랗게 활활 탔다. 우리 집도 활활 일어나라고 말하는지 모른다. 살림도 일구고 씨를 발라내는 일은 힘들지만, 우리가 먹던 산수유 살점은 몸에 좋은 약이었다. 돈 버는 일이 우리한테 좋은 약을 거저먹는 하루였네.

 

2021. 10. 0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