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이야기 78] 까마중
어머니 말로 나는 어릴 적에 입이 짧았다고 했다. 잘 안 먹었다는 말인데 잘 안 먹었는지 아니면 먹지 못했는지 모르나 아마 먹을거리가 없고 있는 거라곤 어린 내 입맛이 없어서 그런지 모른다. 밭둑이나 풀밭에는 곡식과 다르게 지심(풀)이 있었다. 고추잎처럼 보드랍고 얼핏보면 머루처럼 보이는 말랑한 열매가 까맣게 익었다. 우리는 ‘개멀구’라 하고 어머니는 ‘강태’라 했다. 말랑한 열매는 진주목걸이 알만한 게 살짝만 눌러도 터져서 옷에 튄다. 토마토를 잘랐을 적에 안 익은 물컹한 푸른 물이 툭 터진다. 나는 이 열매는 지심이라고 소나 먹는 줄 알고 잘 먹지는 않았다. 달콤하면 잘 먹었지 싶은데, 까마중은 가지 맛이 났다. 밍밍하고 미원 맛나는 이 열매를 먹고 나면 울렁거리고 입안에 남는 냄새가 싫었다. 머루포도 알과 크기도 비슷한데 맛이 달라 눈길을 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달고 새콤하다는데 소먹이러 가면 밭둑이나 논둑에서 자주 보지만 아주 배고프면 따먹었다. 그래도 심심풀이로 놀면서 따먹는다. 까마중처럼 새까만 약을 껌처럼 떼어 납작하게 눌러 다리에 붙인 적이 있다. 어린 날에 다리에 종기가 났는데, 마을에 종기가 돌았다. 나는 종기가 둘이나 셋 났다. 아마도 배고파서 먹었던 까마중 때문에 남보다 종기가 적었을까. 어른이 되어도 그때 난 자국이 왼쪽 무릎 아래 도장 찍은 흉터로 남았다. 사람들이 곡식을 심으면 다른 풀은 잡초라고 뽑아내고 매서운 약을 치고 하는데, 우리 몸에 좋은 풀은 하나같이 지심인 듯하다. 뽑아내도 또 자라 흔하게 나니 흔하게 먹고 우리 몸을 돌봐주려고 우리 몸 가까이에서 자꾸 씨앗을 퍼트리는 듯하다. 풀이 우리를 먹여살리기도 하고 몸을 고치기도 하는데, 이런 풀이 이젠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지려고 하네.
2021. 10. 2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