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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9]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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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79] 재

 

우리 집 아궁이는 네 군데가 있어 돌아가며 재를 퍼냈다. 아궁이에 불을 때면 보드라운 재가 쌓인다. 나는 재를 퍼내는 심부름이 싫었다. 가루가 날고 무거운 망태를 들고 높은 부엌문을 넘기가 힘들었다. 그렇지만 재가 가득 차면 삽으로 퍼내야 아궁이에 넣은 나무가 솥바닥에 닿지 않는다. 새끼를 꼬아 만든 무거운 삼태기에 재를 퍼담아 거름에 쏟아붓는다. 내가 아주 어릴 적에 어머니는 재로 그릇을 씻은 적이 있다. 짚에 재를 담아 물을 부으면 노르스름한 물이 나왔다. 그 물로 빨래를 했다. 할아버지는 몸이 안 좋아서 마당을 기어다니는데, 옷에 흙먼지가 붙고 더러웠다. 비누는 없고 잿물로 빨아도 한복 깃을 달 풀이 없어 이웃한테서 얻어 손질했다. 어머니가 갓 시집 왔을 때는 쌀도 없어 밥풀도 없었다. 아버지는 큰집살이 하면서 밥 먹을 적에 쌀밥을 골라내서 상 밑에 두었다가 들이나 밭에 갈 적에 어머니를 주면 어머니는 그 밥알로 할아버지 저고리 깃을 붙이고 바느질을 해서 입었다. 아버지는 임자 몰래 먹느라 눈치를 보았다. 어린 날에는 보리 짚단에 불을 지펴 밥을 했다. 산에 나무가 자라는 대로 땔감으로 써서 산에도 나무가 없고 땔나무도 늘 모자랐다. 아궁이 불이 타고 남은 재로 그릇을 닦고 빨래를 하면 때가 잘 빠졌다. 이제는 그릇을 따로 넣고 씻는 비누도 나오고 빨래비누도 잘 나와 때가 잘 빠진다. 우리 집에 비누가 없던 때, 불씨가 타고 제 몸 태우고 남겨놓은 재를 어머니는 살뜰히 썼다. 장작도 짚단도 재를 남기고 불을 활활 태우고 바람에 날아갈 듯한 가루로 남아 찌든 때를 빼주었네. 나무와 짚은 우리 집을 따뜻하게 해주고 보드라운 재가 되어 깨끗하게 삶을 일구라고 말하고 싶은지 모른다.

 

2021. 10. 2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