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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0]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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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0] 밤

 

한가위에 마을 동무와 금성산에 올랐다. 풀을 헤치고 길도 아닌 비탈진 자갈을 밟고 오른다.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돌을 밟다가 돌이 굴러떨어져도 올랐다. 더 올라갔다가 내려올 적에는 썰매를 탈지 모른다는 생각에 무서웠다. 길이 가팔라 중턱에서 멈추었다. 끝내 끝까지 오르지 못했지만 내려오는 길에 밤을 서리했다. 밤나무 곁에 떨어진 밤을 까니 굵었다. 나무를 흔들어 밤송이를 떨어트렸다. 쩍 벌어진 송이를 두 발로 밟아 작대기로 벌려서 알을 꺼냈다. 빈손으로 왔다가 주머니 가득 넣거나 품에 넣었다. 떨어진 밤만 주웠더라면 떨리지 않았을 텐데, 나무에 달린 밤을 흔들어서 따고 보니 덜컥 무서웠다. 작은오빠 동무들이 아랫마을 길가에 있는 능금밭에 들어가 재미라며 능금을 따서 먹다가 밭임자한테 잡히자 경주로 집을 나가버렸다. 어머니가 능금값을 물어준 일이 있었다. 남이 심어 놓은 밤을 몰래 따서 밭임자가 알면 얼마나 속쓰리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한 일이었다. 집까지 오는데 가슴이 콩닥거렸다. 밤은 가시를 감싸서 누구도 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지만, 우리가 가로챘다. 밭임자는 멧짐승이 먹었다고 알지도 모른다. 가시에 찔리면 따끔하고 피가 맺혀도 둘러앉아 삶아먹는 재미가 크다. 때로는 겨울잠 자려는 벌레가 먹은 밤을 깨무는데, 이럴 때에는 퉤퉤 뱉는다. 알이 굵은 밤을 칼로 갈라서 작은 숟가락으로 파먹고 껍질째 자근자근 씹는다. 밤이 타박하고 배도 부르다. 밤은 가시로 밤알을 감싸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타박한 밤을 우리한테 주면서 사람들이 먹다가 얹히지 말라고 미리 손을 따 주려나. 밤은 가시 몸과 다르게 마음이 고운지도 모른다. 그날 먹은 밤은 참으로 맛있었다. 우리만 아는 일이다.

 

 

2021. 11. 0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