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2] 고추잠자리
담쟁이에 첫물을 들여 우두커니 바라보는데 잠자리 한 마리가 손에 앉았다. 한참을 꼼짝 않는다. 손을 가만히 멈추고 걸었다. 뒤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에 날아갔다. 어린 날 같으면 날아가기 앞서 얼른 잡았다. 여름이면 잠자리를 잡으러 쫓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 학교길 재를 넘으면 내리막 멧줄기가 아주 길었다. 학교 가는 길 반을 차지할 만큼 길다. 논밭 도랑길 따라 풀꽃나무가 우거진 멧자락에 잠자리떼가 많았다. 아지랑이가 햇살에 피어나고 꽁지가 빨간 고추잠자리가 가지에 내려앉으면 살금살금 다가가 두 손을 모으며 잡았다. 그물무늬 날개를 잡고 놀다가 한쪽 날개를 떼어 날렸다. 바닥에 꼬꾸라지듯 떨어진다. 주워서 이제는 빨간 꽁지를 뗐다. 이러고도 모자라 큰 눈이 차지한 머리도 뗐다. 어떤 날은 주머니가 달린 감을 따던 장대를 들고 와서 잠자리를 통째로 사로잡았다. 두 마리가 포개어 붙어 날거나 가만히 앉은 잠자리, 꽁지끼리 붙은 잠자리를 같이 잡았다. 놀이로 잠자리를 잡기도 하고 숙제를 풀려고 잡았다. 잠자리는 날개가 있으면서 달아나지 않고 붙잡힌다고 생각했다. 먹이를 잡아먹지도 않으면서 날개를 펼치고 가만히 앉아 쉬다가 우리한테 잡혔으니 머리가 나쁜가. 큰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듯했다. 햇살이 뜨거운데 해바라기를 할까. 몸이 추워서 그물 날개를 펼치고 햇볕을 쬐었지 싶다. 애벌레 몸이 거듭 허물을 벗고 날개를 달고 나왔을 텐데, 망가뜨린 날개옷을 돌려 달라고 온 듯했다. 그렇지만 어린 날 고추잠자리는 빨간 꽁지를 쫓아다니는 우리를 따돌리는 재미로 몰려왔는지 모른다.
2021. 11. 1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