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6] 구기자꽃

URL복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6] 구기자꽃

 

묵정밭에 풀이 자란 숲길을 내려오다 구기자꽃을 보았다. 작은나무에 열매도 몇 알 익어가는데 뒤늦게 보랏빛꽃이 피었다. 아홉이나 열 살 무렵에 장골에서 구기자를 땄다. 우리가 살던 집 뒤에 도랑이 있고 도랑 너머 감나무에 숙이네 소를 묶어 두던 풀밭이 있다. 숙이네 울타리이자 우리 집 울타리이다. 멧골에서 빗물이 흘러 지나가는 도랑둑에 우리 구기자가 한 그루 있었다. 윗집 숙이네는 골목에서 집까지 긴 마당으로 들어가는 가파른 밭둑으로 구기자가 울타리로 길게 우거졌다. 구기자는 개나리처럼 가지를 뻗었다. 나무가 여리고 가늘었다. 덤불이 나지막하게 빵빵하게 퍼진다. 보드라운 줄기는 쉽게 번지지 않고 나무도 잘 크지 않아 언제나 우리 눈높이보다 높지 않았다. 구기자잎은 개나리잎보다는 보드랍고 고춧잎보다 빳빳하다. 나뭇가지가 가늘어 금낭화처럼 휘청이도록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푸른빛이 노랗게 익고 빨갛게 무르익어 빛깔이 곱다. 우리는 빨갛게 익은 것만 골라 땄다. 산수유는 씨가 있어 알이 탱탱한데 구기자는 물컹해서 작은 알을 따려고 힘을 주다가는 손힘에 툭 터진다. 물컹하게 튀어 얼굴과 옷에 물든다. 빛깔이 고와 맛이 있을 듯하지만 쌉싸름하다. 붉게 잘 읽으면 달금하다던데 내 입맛에는 밍밍하다. 가을햇살을 받으며 따는 일은 재밌다. 숙이네는 구기자가 많아 놀이 삼아 거들었다. 나는 날로 먹은 구기자 맛 때문인지 토마토를 잘 먹지 못하는가. 개운하지 않은 맛일까. 푸른빛은 아이들이 먹는 맛일까. 애들이 먹으면 배앓이가 날까. 바알간 빛이 돌면 아직 이르다 알리고 빨간빛이 돌 적에 아이들이 먹으면 배앓이를 한다고 귀띔했을까. 한 가지에 세 빛이 흐르니, 할머니랑 어머니랑 내가 나란히 있는 듯하다.

 

2021.11. 2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