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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9] 떡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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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89] 떡갈나무

 

멧골을 오르는데 비가 내린다. 빗줄기가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가 여리다. 바람이 불지 않는데 돌개바람이 쓸고 간 듯 바닥에 떡갈나무 가지가 떨어졌다. 오른쪽에는 밤송이가 잘린 채 이리저리 잔뜩 흩어졌다. 우듬지를 쳐다보고 옆을 봐도 밤나무는 없다. 어디서 떨어졌을까. 나는 떡갈나무를 한가지 집었다. 도토리가 아직 작고 푸르다. 하나같이 도토리 둘이나 셋 나뭇잎 네다섯이다. 도토리가 익으면 깍지에서 떨어진다. 어릴 적에 어머니는 마늘 심는 앞치마를 하고 꿀밤을 줍는다. 마을을 벗어나 골이 진 멧자락에서 꿀밤을 주웠다. 어머니는 꿀밤을 며칠 물에 불렸다. 떫고 아린 맛을 뺀 다음 껍질을 손질해서 도토리묵을 쑨다. 어머니가 쑨 도토리묵은 허옇거나 떫지 않았다. 무를 가늘게 썰어서 양념하고 간장을 맛있게 장만했다. 묵에 간장만 뿌려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참기름맛과 어울려 고소한 냄새로 살짝 떫은 맛도 모르고 먹었다. 도토리를 주울 적에 구멍이 나서 벌레 먹었다고 버리곤 했는데, 이제 곰곰 생각하니 도토리거위벌레 알집이었다. 나뭇잎이 달린 가지를 자른 것도 알을 낳으려고 한 일이었다. 떡갈나무는 제 나뭇잎을 타고 땅으로 내려가는 아기집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알이 누렇게 여물지도 않았는데 선뜻 몇 알을 주며 거위벌레와 서로 도우며 지내네. 한 알이라도 더 주우려고 돌로 나무를 찧고 발로 쿵쿵 박차며 흔들었는데, 어쩐지 부끄럽다. 네가 베풀어서 도토리묵을 먹어 보았는데.

 

2021.12.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