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0] 배롱나무
자주 가던 뒷골에 배롱꽃이 발갛게 피었다. 봄이면 개나리가 피고 여름이면 배롱꽃이 피고 겨울이면 눈꽃이 피는데 나무가 우거져 가지와 가지가 맞닿았다. 꽃도 나무도 참 곱다. 어린 날에는 배롱나무를 본 적이 없다. 나무가 매끄럽고 꽃잎이 꼬불꼬불 종이를 구겨 놓은 듯하다. 배롱꽃을 보면 어릴 적에 접던 종이꽃이 떠오른다. 봄과 가을에 학교 잔치가 열리면 언제나 마을잔치였다. 마을 언니들과 꽃을 만들었다. 얇은 종이를 몇 겹을 모아 부채꼴로 접어서 반으로 꺾어 실로 묶었다. 그런 다음 이 종이를 한 장씩 펼치면 꽃이 되었다. 배롱꽃빛이었다. 손가락에 묶고 고깔 모자에 실로 꿰매어 쓰고 춤을 췄다. 우리가 만든 종이꽃은 작약꽃만큼 컸지만, 종이가 하늘거려 배롱꽃을 닮았다. 여름에 배롱나무 굴을 지나면 붉게 배롱꽃이 피듯이 핏대를 높여 춤추던 종이꽃을 보는 듯하다. 꽃과 나무가 고와서 뜰을 건사하면 한 그루 가꾸고 싶은 나무이고, 배롱나무에 핀 꽃을 볼 적마다 운동장이 떠나갈 듯 부르던 우리 목소리가 피어난 듯했다.
2021.12.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