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3] 버즘나무
어린 날 학교 가는 길에는 나무가 한 그루도 없다. 논을 가로지른 길이다. 학교에는 버즘나무가 운동장을 둘러쌌다. 나무 사이에 매달아 놓은 그네를 타고 널놀이(시소)를 탔다. 운동회가 열리면 나무 밑에 마을마다 자리를 깔고 앉았고, 아이들이 청군 백군으로 앉았다. 나뭇잎이 커서 햇빛을 가려 주고 찬바람이 불면 손바닥 크기 나뭇잎이 떨어져 바람에 굴러다녔다. 버즘나무를 가만히 보면 껍질이 벗겨졌다. 어린 날 내 얼굴에 피던 마른버짐 같다. 어릴 적에 입가와 두 볼에 하얗게 동그라미로 피었다. 터실터실한 살갗이 가려워 긁는다. 얼굴이 말라 당겨도 촉촉하게 해줄 꽃가루(화장품)도 없고 연고도 없었다. 밥을 잘 먹지 못해서 얼굴에 허옇게 자주 피었다. 하루는 아버지가 고등어가 너무 먹고 싶어서 비육병에 걸렸다. 참으려고 해도 고기가 먹고 싶어 보다 못한 어머니가 읍내에 가서 고등어 한 손을 사 왔다. 아버지 혼자서 먹지 못하니 같이 먹었다. 얼굴에 버짐이 나도 약을 먹지 않고 저절로 삭도록 내버려 두었다. 버짐이 피다가 어느 날 말끔하다. 내 버짐이 언제 사라졌는지 그다지 눈여겨보지 않는다. 우리 얼굴에 난 버짐은 동그라미만 그리는데 버즘나무는 사람 얼굴도 그리고 짐승도 그리며 껍질이 벗겨졌다. 벗겨진 나무를 만지니 푹신하면서 보드랍다. 버즘나무는 껍질이 똥일까. 벗겨져서 춥지 않을까. 버짐이 언제 사라지는지 모르게 낫듯이 나무도 많은 잎을 건사하느라 껍질이 벗겨지는지 모를까. 햇볕을 듬뿍 먹으면 나을까. 버즘나무가 흙먼지 탁한 바람을 너무 먹은 탓일까. 우리 더위 식히느라 힘들었을까. 버즘나무는 얼룩무늬로 그림을 그리는 거리나무로 살았네.
2021. 12.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