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94] 닭벼슬꽃(맨드라미꽃)
순이네 담벼락과 앞집 담벼락이 끝나는 골목 안쪽에 우리 집이다. 골목이 길어 대문 밖에 앞집 담벼락이 우리 집 살피꽃밭이다. 마을 가꾸기를 한 뒤로 집집이 꽃을 심는데, 앞집 지붕으로 우리 골목 꽃밭은 그늘이 일찍 든다. 그나마 볕이 드는 자리에 맨드라미꽃이 피었다. 우리는 달구벼슬꽃이라 했다. 꽃이 우리에 키우던 닭볏하고 닮았다. 꼬불꼬불한 주름이며 붉은빛은 손으로 만지면 뽀송뽀송하고 매끄럽다. 짧은 털옷을 만지는 느낌이다. 꽃이 마르면 까만 씨앗이 촘촘하게 박히고 떨어진다. 우리 집에서 키우는 닭이 씨앗을 쪼아 먹었다. 우리 먹을 밥도 모자랄 적에는 닭한테 먹일 모이가 없어서 키우지 못하다가 살림이 조금 나아져서 닭을 다시 들였다. 아침마다 닭집 문을 열어 주려고 가면 닭장 높이 홰를 타고 있다. 누구든 아침에 눈을 뜨면 닭장 문부터 열어주었다. 닭을 내쫓으면 마당 구석구석 흩어지고 거름을 파서 먹고 마당에 떨어진 알곡을 쪼아 먹는다. 보리를 바심하고 나면 마당에 떨어진 알곡이 많다. 풀어 놓은 닭은 마당에 흩어진 보리를 다 주워 먹고 대문을 나와 풀도 뜯어 먹고 마을 밖으로 나와 이웃집 배추도 쪼아 먹는다. 날이 어두우면 닭이 한 마리씩 들어온다. 멧산 살쾡이가 잡아가서 닭장에 가둔다. 나는 닭을 봐도 우리 닭인지 잘 모르겠던데, 어머니 아버지는 헤아려 보고 모자라면 닭을 찾으러 다녔다. 아버지는 우리 닭인 줄 어떻게 알고 닭을 앞세우면서 두 팔을 흔들며 몰이했다. 닭이 자라면 한 마리씩 잡았다. 목을 비틀어 소죽 그릇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붓고 털을 뽑았다. 배를 가르면 모이주머니에 먹었던 모이가 찼다. 노란 달걀도 품었다. 닭벼슬꽃은 목을 뺄까. 저와 닮은 볏을 한 닭을 잊지 못하는 까닭이 있을까. 닭을 잡아먹고 시치미 떼는 우리한테 새빨간 거짓말은 하지 말고 살자는 알리는 빛깔일까. 따로 가둬놓고서 모이를 주지 않아도 닭이 알아서 먹이를 찾아 먹으며 집 안팍을 돌아다니던 삶이 선비 같다.
2021. 12. 2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