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0] 개나리
우리 마을에서는 개나리를 ‘이애’ 라고 했다. 개나리는 잎보다 꽃이 먼저 핀다. 옥이네 뒤산으로 밭으로 가는데, 산꼭대기에 여우가 파먹는 무덤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 점낫골 못 가기 앞서 우리가 부치는 밭이 있고 도랑 따라 개나리꽃이 활짝 피면 멧골이 온통 노랗게 물든다. 개나리 나무가 넝쿨이 커서 어른보다 더 자랐다. 가을이면 씨앗이 주렁주렁 열렸다. 열매가 흙빛으로 익으면 주둥이가 쩍 벌어지고 씨가 나왔다. 껍질이 저절로 벌어지기 앞서 씨앗을 땄다. 비닐을 바닥에 깔고 작대기로 때렸다. 잔가지를 주워내고 열매를 통째로 면자루에 한 말씩 담아 장날 작약 같은 한약재 파는 집에 팔았다. 개나리 씨앗을 사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돈이 될 만한 열매는 무엇이든 저자에 내다 팔았다. 우리 마을은 경북 의성군 사곡면인데 풀이 자라지 않는 등성이 길이다. 밟으면 뭉개 으스러지는 비렁길과 도랑 둑에 개나리가 뭉쳐 자랐다. 우리 마을에 자라던 개나리와 도시에 사는 개나리는 씨앗이 다르지 싶다. 도시 개나리나 요즘 숲에서 보는 개나리나무에 열매가 거의 없다. 겨우 찾았다. 어린 날 개나리 열매를 맨손으로 껍질째 만져서 그런가. 나는 얼굴이나 팔에 여드름은 나지 않았다. 작대기에 맞은 개나리는 그렇게 두들겨맞고도 우리한테 먼저 푸른 내음을 내주었을까. 나뭇가지는 엉키고 열매는 작으니 매를 맞나. 봄을 가장 먼저 알려주고, 씨앗을 아무 때나 떨구지 않고, 움켜쥐고 매를 맞고도 우리한테 씨앗을 품은 껍질로 자취를 주는 개나리 마음일까.
2022. 01.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