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1] 콩고물
우리 집 정지(부엌)는 빗장을 열고 들어간다. 문짝이 두껍고 아궁이에서 불을 때느라 나온 매운 김에 그을려 문이며 천장이며 온통 까맣다. 바닥은 오돌토돌하지만 밟히고 밟혀 흙바닥이 반질반질했다. 가마솥 하나와 작은 양은 솥 하나로 밥과 국을 끓였다. 가마솥에서는 밥을 하고 범벅을 끓였다. 찰밥 팥죽도 했다. 말끔히 씻어내고 콩이나 깨도 볶았다. 제사에 쓰일 떡을 하려고 콩고물로 쓸 콩을 볶는데, 덜 볶으면 가루가 하얗다. 고소하게 먹으려고 콩을 달달 볶다가 껍질을 태우기도 했다. 볶은 콩을 디딜방아에 넣고 찧고 채로 치면 가루를 곱게 내어 떡고물을 썼다. 떡고물을 하고 남으면 어머니는 부뚜막에 쥐가 다닌다고 큰 통에 담아 둔다. 나는 밥 먹을 적에 콩고물을 한 숟가락씩 떠서 밥에 섞었다. 손으로 뭉치거나 숟가락으로 눌려서 먹다가 목이 막혀 마른기침을 하기도 했다. 콩고물이 달고 고소해서 다른 반찬이 없이도 먹었다. 여름이면 어머니는 들일 갈 적에 콩고물에 밥을 비며 먹는다. 식은밥을 맨손으로 통에 넣고 고물을 묻혀서 주먹밥을 쥐어 먹느라 손이며 입이며 옷이며 가루를 잔뜩 묻혔다. 어머니가 쑥떡을 찍어 먹으라고 보낸 콩가루에 밥을 묻혀 먹으니, 어린 날 먹던 맛이 나지 않는다. 어린 날에는 방앗간에서 볶지 않았다. 깊은 골짜기에 사니깐 길이 안 좋아 찻길이 없었다. 부뚜막에 다리를 걸터앉아 매운 김을 마시며 나무주걱하고 술래하면서 타지 않으려고 콩콩 튀던 콩알이 불을 만나 가루가 되다니. 콩은 제 몸을 찧고서야 고운 가루를 내놓아서 콩밥보다 가루가 고소할는지 모른다.
2022. 01. 1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