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3] 버들강아지
열다섯 살인 나는 학교 가는 길이 멀었다. 집에서 아랫마을을 지나 멧골로 올랐다. 뒷메보다 높은 멧골이지만 몸이 작은 그때는 오르막이 높게만 느꼈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지름길로 가기도 했다. 덜 가파른 길로 돌아서 꼭대기에 닿으면 구불구불한 멧허리를 따라 긴 오솔길을 한참 걸으면 이제 가파른 내리막길로 미끄러지듯 쫓기듯 숨차도록 멧길을 다 내려오면 마을이 보이고 길이 좋았다. 윗음지 아래음지 마을 지나고 큰 내를 잇는 다리 하나를 건너 양지마을을 지나면 학교에 닿았다. 하루는 아랫마을을 지나 멧길을 올랐다. 오솔길은 혼자 지나갈 틈으로 누가 말하지 않아도 줄을 지어 걸었다. 나는 맨 앞에 걷고 싶었다. 그렇지만 나는 꼴찌로 가기로 했다. 걷다가 뒤를 힐끗 보고 또 돌아보았다. 아랫마을 숙이하고 희야가 뒤따라왔다. 나는 두 동무한테 길을 비켜주려고 섰다가 버들강아지를 만났다. 잿빛 털이 난 작은 버들강아지가 눈망울을 틔운다. 손을 가까이 대어 만진 털이 보드라웠다. 두 친구가 내 앞에 다 지나가고서야 멈춘 내 발걸음을 옮겼다. 키가 크고 늘씬한 숙이 뒤를 따라갔다. 나는 내 뒤에 누가 따라오면 아주 싫어했다. 내 뒷모습을 남한테 보이기 싫었다. 손수 밥지어 먹을 적에 집임자 할머니가 똑바로 안 걷는다고 말 한 뒤부터 그랬다. 등성이가 끝나고 다시 내려올 적에는 두 동무를 앞지르고 우리 마을 아이들 따라잡았다. 가파른 내리막길은 내 뒷모습을 찬찬히 보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버들강아지 앞에 멈추고 뒷사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던 그때가 얼마나 길었는지 모른다. 하얗게 눈이 앉은 듯한 잿빛 버들강아지는 나를 살며시 다독여 주었다. 몹시 부끄러워 남 앞에 떳떳하게 걸어가지 못하던 때 버들강아지가 아픈 마음을 쓰다듬었다. 작고 보드라운 털이 좋아 버들강아지를 닮은 옷을 한동안 입고 다녔는지 모른다.
2022. 01. 1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