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4] 마가목
멧높이가 천 미터를 넘는 염불봉 바위 옆에 마가목 열매가 익어간다. 나뭇잎이 푸르게 우거진 숲에 발갛게 익은 첫 열매가 눈에 확 띈다. 마가목 줄기로 채찍질하면 말이 죽는다는 옛말을 들었는데, 우리 할아버지는 지게 작대기에 맞아서 죽다 살았다. 할아버지가 아기일 적에 할아버지 어머니가 젖만 먹인다고 할아버지 아버지가 꾸지람했다. 일도 안 하고 밍(무명)만 만지고 물레로 실만 감는다고 못마땅하게 여겼단다. 할아버지 아버지가 지게 작대기를 들고 할아버지 어머니를 때리려 했다. 외동아들인 할아버지를 안았는데, 설마 때리기야 할까 씨름하다가 내리치는 작대기를 안 맞으려고 그만 아기인 할아버지를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작대기에 그대로 맞아 다리가 부러졌다. 이 일로 할아버지는 어린 날부터 제대로 걷지 못했다. 제대로 걷지 못해서 말을 타고 다녔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세 해 동안 살림을 야금야금 바닥냈단다. 몸이 안 좋아서 농사를 짓지 못했다. 돈이 없으니 땅이라도 팔아서 그때그때 곁에서 비위 맞추는 사람들 꾐에 넘어갔다. 마음이 좋은 날이면 논 한 뙈기 주고, 절에도 떼주었다. 할아버지가 좀 아꼈더라면 우리 아버지도 남들처럼 배우고 머슴살이를 안 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탓한 적이 없다. 아버지는 여든 살이 넘은 할아버지를 말에 태워 주었다. 할아버지를 업고 경주 나들이를 갔다. 작은오빠 말로는 그렇게도 좋아하더란다. 다음해에 돌아가실 때까지 말을 타던 이야기를 했다. 마가목은 때리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곱게 익어 새가 먹고 가장 높은 자리에 퍼뜨려 달라고 했을까. 여름 숲을 마가목 열매로 가장 먼저 물들이네.
2022. 01. 3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