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5] 고구마꽃
한가위가 다가올 무렵이면 앞산밭에서 고구마를 캤다. 아버지가 낫으로 줄기를 걷어 한쪽으로 모으면 우리는 뽑힌 고구마는 줍고 흙에 남은 고구마는 호미로 살살 캔다. 고구마가 깊이 박혔는데 흙을 깊이 안 파고 힘으로 당기다가 똑 부러지거나, 호미에 찍혀 흉을 냈다. 고구마를 다 캐고 어머니는 반찬 한다며 고구마 줄기를 땄다. 고구마를 캐서 앞산을 내려오는 길은 신난다. 내리막길이 이어져 다다다 이리저리 떠밀리다가 멈추면서 내려왔다. 캔 고구마는 자루째로 할아버지가 주무시는 윗목에 둔다. 겨울밤이면 뒷방에서 아버지 어머니는 가마니를 짜고 새끼줄을 꼰다. 나는 아버지한테 물어서 새끼줄을 꽈 보지만, 두 손으로 비벼도 짚이 잘 꼬이지 않자 싫증 내고 뒷방에 간다. 아버지가 짜는 가마니를 돕는다고 걸어 놓은 돌을 넘겨주고 고리에 짚을 걸어주었다. 밤이 깊어 갈 무렵이면 어머니는 배추뿌리를 씻어 주고 고구마도 깎는다. 날것으로 깨물면 천둥소리가 난다. 소죽 끓인 불씨에 고구마를 묻어 두다가 새까맣게 타기도 하지만 속은 노릿하다. 군고구마를 먹으면 우리 입술은 까맣다. 어린 날에는 타박한 밤고구마가 호박고구마보다 맛있었다. 고구마꽃은 나팔꽃처럼 귀를 열고 바람소리 듣고 흙이 숨쉬는 소리도 듣고 밭둑에 있는 감과 자두 익어가는 소리도 듣고 새소리하고 숲노래를 들려주었네. 고구마가 주렁주렁 열리라고 나팔꽃으로 노래했을까. 고구마는 땅 밖으로 나올 적에 사람처럼 바깥바람을 느낄까. 방구석 자루가 땅속인 줄 알까.
2022. 01. 3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