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숲하루 발걸음 17] 눈

URL복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17] 눈

 

어린 날 새벽에 눈을 뜨면 문밖이 환한 적이 있다. 달빛에 밝아서 환하기도 하지만 밤새 눈이 내렸다. 잠결이지만 문을 열어 달빛인지 눈이 내렸는지 눈으로 보고 다시 잠든다. 내가 먼저 마당에 눈을 밟고 싶었다. 하얀 마당에 발자국을 내고 신발 자국을 동그랗게 찍는 재미가 있었다. 어떤 날은 아버지가 우리가 자는 사이에 눈을 치워버렸다. 나는 아버지한테 눈을 다 치웠다고 칭얼거렸다. 어떤 날은 발목이 잠기도록 내려서 온 집안이 눈을 친다. 아버지는 눈치는 나무판으로 밀고 삽으로 떴다. 나는 동생하고 작은오빠하고 눈싸움하다가 머리를 맞고 등을 맞고 울기도 했다. 눈싸움이 끝나면 맨손으로 눈을 단단하게 뭉친 다음 눈 밭을 굴렸다. 마당 이리저리 돌면 눈이 뭉치고 차츰 커졌다. 골목으로 다니면서 눈을 크게 굴렸다. 더 크게 굴리다가 부서지기도 하면 다시 굴렸다. 굴린 눈덩이를 포개니 눈사람이 되었다. 나무를 꺾어 코와 눈썹과 입술을 달아주었다. 아버지가 수레에 담은 눈을 골목 끝 도랑에 쏟아부었다. 아버지가 몇 수레 부어 놓은 수북한 눈을 삽으로 탕탕 치면서 고르고 미끄럼타기를 했다. 어린 날에는 눈이 자주 펑펑 내렸다. 눈은 우리가 잘 적에만 잘 내려오네. 그 많은 눈이 소리 없이 내릴까. 눈은 아이들이 좋은가. 눈사람이 되고 싶은가. 손이 시려 입김을 불며 데굴데굴 굴리는 아이들하고 놀고 싶은가. 눈사람을 굴려 놓고는 목도리도 옷도 장갑도 끼워 주지 못했다. 한동안 사람 모습으로 머물다 간 눈아, 해 뜨면 물로 몸을 바꾸는 눈아, 네가 밤새 뿌려 놓아 글씨를 많이 썼구나. 너는 멋진 그림종이였어.

 

 

2022. 02. 0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