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풀꽃나무 이야기 108] 모과나무
들은 말인데, 할아버지는 살림을 많이 물려받았다. 그렇지만 논과 밭을 잘 건사하지 못해 우리 아버지가 태어났을 적에는 알거지가 되었다. 집을 자주 옮기고 옛어른이 쓰던 옆집에 아주 자리를 잡았다. 나는 옆집을 가끔 훔쳐보았다. 흙담 너머로 기와집과 매끈한 마루가 있고 마당에 텃밭을 가꾸었다. 대문은 나무로 짰고 아주 높았다. 대문 위쪽으로는 흙담을 지어 멍석이며 연장을 두었다. 모과를 주우러 가고 숨바꼭질할 적에 옛어른이 살던 옆집에 들어갔다. 내가 뒤안에 간 까닭은 모과 때문이다. 모과나무는 언덕집 나무인데 두 집 사이에 자랐다. 뒷집은 친척이자 오빠뻘과 동생뻘 집이라서 자주 갔다. 뒷집을 가려면 마을을 반 바퀴 돌아야 해서 잔꾀를 부렸다. 우리 담을 밟고 돌 틈에 자란 나무를 잡고 뒷집에 갔다. 뒷집은 마을이 훤히 보이고 담은 어린 내 허리 높이로 조촐했다. 담 곁에 모과나무가 있다. 머스마들은 모과나무에 올라가 놀기도 했다. 나는 노랗게 익은 모과가 너무 갖고 싶었다. 모과가 떨어지면 옛어른이 살던 집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렇게 내 손에 들어온 모과를 만지면 미끈미끈하고 냄새가 참 좋았다. 모과를 깨물면 단단했다. 씹으면 입안이 꺼끌꺼끌해서 물만 쪽쪽 빨아 먹고 찌꺼기는 뱉었다. 모과는 꽃도 아닌 열매에서 향긋한 내음이 짙을까. 무겁지 않을까. 그 많은 열매를 달고도 나뭇가지가 부러지지 않을까. 모과나무 가지가 튼튼해서일까. 빛깔도 곱고 냄새도 좋은데 사람들은 못생긴 사람을 보고 모개라 한다. 과일이면서도 그냥 먹지 못해서 그럴까. 뒷집 모과나무가 있어 나는 우리 옛어른이 살던 집을 슬쩍슬쩍 들어가 보았다. 이제는 옆집도 빈집이 되고 모과도 쌓일 테지.
2022. 02. 0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