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숲하루 발걸음 25] 사미 약방

URL복사

[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5] 사미 약방

 

어지간해서는 약을 먹지 않는데, 몸살이 돌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스피린을 처음 먹었다. 내가 약을 잘 안 먹는 까닭이 있다. 감기에 걸려도 그냥 버틴다. 아주 어려 걸음마를 할 무렵에 후끈 달아오르고 갑자기 아팠단다. 어머니는 재 너머 사미에 있는 약방에서 약을 지어 먹였다는데, 잘 걷던 내가 그 뒤로 걷지를 않으려고 했단다. 읍내 병원에까지 가야 했단다. 어린 날에는 내가 많이 여렸나 보다. 사미 약방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약을 먹기를 꺼린다. 박카스를 먹으면 이내 머리가 빙빙 돈다. 약을 먹으면 더 그렇다. 어린 날 어떤 약인지 모르나 나는 이 약이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고 생각했다. 밝은 길보다 시커먼 어둠을 생각한 마음이 깊이 스미고,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게 걷거나 다니지 못했다. 큰길보다 사람이 뜸한 뒷골목으로 다녔다. 씩씩함을 몽땅 앗아간 뿌리일 텐데, 나를 오래도록 괴롭혔다. 꿈을 꾸지도 못한 채 꿈을 잃어버린 셈이랄까. 따로 약을 안 먹어도 하루이든 며칠이든 앓고 나면 말끔히 털고 일어났으니 내 몸이 아주 여리지는 않고, 제법 튼튼했다고 본다. 약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멧골에서 바람과 햇볕을 먹고 뛰놀며 조금씩 단단히 자랐다고 느낀다. 약힘을 안 빌려도 되었을 테지만, 약힘을 빌리지 않으면 안 낫는다는 두려움이라는 씨앗이 어릴 적에 확 들어온 탓일는지 모른다. 이제 사미 약방에는 예전에 있던 사람은 없을 텐데, 이곳 앞을 이따금 지나갈 적마다 문득 어릴 적 몸앓이가 떠오른다.

 

 

2022. 04. 0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