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숲하루 발걸음 27] 밤에 학교 가다
제사인지 할아버지 생신인지 두 고모네가 우리 집에 왔다. 이날은 몹시 아파 몸이 후끈거렸다. 어른들이 안방에 둘러앉아 화투를 치고 놀 적에 나는 방 안쪽 귀퉁이 책상에 앉아 숙제를 했다. 그러고는 스르르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고모가 밥 먹자고 깨웠다. 시계를 보니 여덟 시쯤 되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학교 늦는다고 가방을 챙겨 방문을 열었다. 밖이 캄캄했다. 방에 있던 어른들이 크게 웃는다. 아침인 줄 알고 학교에 늦는다는 생각만 했다. 우리 집은 방이 둘이라서, 손님이 오면 안방에 모이고 우리는 안쪽 벽장 앞에서 숙제를 했다. 고모는 숙제한다고 책상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칭찬했다. 고모가 칭찬하니 기뻐서 책을 보는 척했다. 들일 밭일이 바쁠 때에도 시험공부 한다고 하면 우리 집에서는 봐줬다. 어머니는 내가 꾀부리는 줄도 모르고 몸이 여려서 봐주었지 싶다. 나는 어찌 손님이 오면 ‘하는 척’을 할까. 딱히 우리가 놀이가 없는 방에서 그저 책상에 앉아 책을 넘겼지 싶은데, 고모는 볼 적마다 내가 공부하는 줄 알고 이뻐한다. 이뻐하니 더 하는가. 고모는 무엇이든 내가 잘 한다고 부추겨 주었다. 머슴아처럼 밖으로 돌던 고모 딸이 날 닮기를 바랐을까. 돌아보니 큰힘이었고, 오늘날까지도 고모한테는 나는 공부벌레이다.
2022. 04. 2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