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홀로보기]
제주도에서 2 바닷가 걷기
이제 공항에 내린다. 내 이름을 적은 알림판을 찾아본다. 길잡이(가이드)라고 하는 사람은 이녁 손에 든 종이만 들여다볼 뿐 내가 알림판을 찾아야 하는 일은 모르는 척한다. 한동안 헤매다가 드디어 알림판이 보인다. 사람들이 많은 탓에 가려서 안 보인 듯하다. 큰 버스에 다섯 사람씩 세 무리를 태우고서 세 군데 숙소를 돈다.
나는 마지막으로 내린다. 그런데 내가 묵을 곳 가까이에는 식당이 안 보인다. 제주도로 나들이를 오기 앞서 며칠 앓느라, 비행기에서 내리고 한동안 실랑이를 벌인 끝에 숙소에 닿자니 벌써 기운이 없는데, 밥 먹을 곳을 찾을 길이 없다.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 들러 죽 하나와 베지밀을 산다. 입맛이 없다.
창밖을 본다. 바다가 훤히 보인다.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바다를 보다가, 그냥 저녁을 굶더라도 좋으니, 꿈같아 보이는 바닷빛에 마음이 들뜬다. 어둡기 앞서 나가자. 오히려 속이 비면 더 가볍겠지. 곧게 난 길을 따라 바다로 간다.
길가이지만 이쪽으로는 자동차가 오가지 않는 듯하다. 돌담을 쌓고 나무를 심은 밭이 있고, 보리가 익은 밭이 넓다. 이 바닷가에서 해넘이를 보고 싶다. 어디서 보면 좋을까. 구름을 품고 붉게 물들며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해를 더 가까이 보고 싶다. 훨씬 트인 곳을 찾아 빨리 걷는다.
바람은 차다. 제주도에는 서른두 해 만에 와 본다. 해거름빛이 퍼지니 검은 바위는 더 검어 보인다. 바위 너머로 풀밭이 넓다. 어디로 들어가면 좋으려나 두리번거리지만 따로 들어가는 길은 안 보인다. 사람이 못 들어오도록 둘러친 듯하다.
저녁노을을 보며 한참 걷다가, 자칫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할까 싶어 더 멀리는 가지 않는다. 어둑살이 짙을 즈음 되돌아간다. 숙소에 들어와 생각해 본다. 제주도에 내리면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제주 시내에 있다는 오래된 책집에도 들르고 싶은데, 이 숙소하고는 멀지 싶다. 어쩌면 안 멀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혼자 나들이를 와서 혼자 낯선 곳을 찾아다니자니 좀 무섭다.
다시 창가에 앉는다. 노을 꼬리를 또 본다. 아직 해가 다 넘어가려면 멀었구나. 구름이 걷히면 붉게 물드는 바닷물을 볼 수 있었을까.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걸어 보자고 다짐한다. 새벽길을 걸어 보고, 제주도에서 밭일을 하는 할매를 만나면, 까무잡잡한 밭흙 한 줌을 얻을 수 있는지 여쭙고 싶다. 나는 멧골에 오를 적에도 싱그러운 숲흙을 한 줌 얻어서 돌아가곤 한다. 흙 한 줌을 우리 집 꽃그릇으로 옮겨놓으면, 집하고 일터 사이만 오가더라도 이 흙내음을 맡으면서 마음으로는 늘 먼먼 숲바람과 바닷바람을 누린다고 느낀다.
2022. 05. 15.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