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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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3 달무리
자다가 추워서 눈을 뜬다. 넓은 창에 하늘이 꽉 찬다. 다시 눈감았다가 뜨니 달빛이 들어온다. 반달이 기둥에서 나왔다. 반달이 ‘왜 깼냐?’고 묻는 듯했다. 그러고서 달님은 달무리에 가려 자꾸만 바다로 떨어진다. 일어나 앉아서 달님한테 ‘더 놀다 가’ 하고 말했다.
“너 왜 그리 어두워? 여행 노래 부르더니. 안 즐거워?”
“아니, 기운이 없어서. 빵만 먹는 거 봤잖아. 사진 찍으니깐 얼굴 함 봐. 2키로 빠졌으니 어질해. 많이 아팠다”
“한 달 전과 다르잖아?”
“여행 가는 사람 같지 않아. 얼굴이 굳었어.”
“내가 여기서 뭘 바랄까 하고 생각해 봤어.”
창밖으로 하늘을 보는지 바다를 보는지 잘 모르겠다. 달님보고 더 있어 달라고 했는데 더 빨리 사라지는 듯하다. 납작납작 구름 사이로 쏙 들어가 버린다. 아까 붉은 노을이 머물던 구름이다. 달님은 바다로 안 빠진다. 이튿날 밤도 달님이 올 수 있겠다.
잠자리는 다르고 내가 있는 자리가 달라도 저 달님은 집에서 본 달처럼 같은 길로 지나간다. 내가 지내는 방도 노을이 건물과 건물 사이로 드리우고 달님은 지붕으로 지나간다. 그리운 것이 저 달님이던가. 첫날밤은 달님하고 잤다.
2022.05.19..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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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4 모래집
새벽에 일어나서 바닷가를 걸으려고 했다. 창으로 보니 바다가 호텔 지붕 너머로 펼쳐지는 듯했다. 날이 흐리다. 해돋이는 보지 못하겠다. 키가 큰 종려나무가 바람에 세차게 흔들린다. 밭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고 바람에 쓰러지려 한다. 쓰러지려 해도 바람을 맞는다. 까마귀가 네모난 지붕에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나는 창가에 앉아 바다를 본다.
나한테 오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했다. 부드러이 왔다가 단물을 빼먹고 빠져나가듯 그런 모래집을 짓는 삶을 짓지 않았나 문득 생각한다. 창밖에는 바람만 이야기할 뿐, 고요하다. 종려나무는 바람과 무슨 말을 하기에 잎으로 부채질을 할까. 뾰족하고 커다란 잎이 새로 돋는 잎 자리에서 바람을 온몸으로 막는 듯 같다.
뾰족하게 돋았다가 말라서 꺾인 종려나무 이파리인데, 바람이 불 적마다 어쩐지 이 바람이 좋다고 춤을 추는 듯하다. 바람은 춤추는 이파리가 반가워서 아껴 줄까. 밖으로 나온다. 버스를 기다린다. 오늘까지 살아온 나날을 고요히 생각한다. 나는 누구를 보거나 맞이하면서 기뻐하는지, 누구를 기쁘게 해주는지. 주면 받고 싶은 일은 없었는지.
삶은 주거니받거니 흐르기도 하지만, 주지도 받지도 않으면서 막히기도 한다. 막힐 적에는 어느 날 아주 쉽게 허물어지는 사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것이 왔다가 썰물처럼 사라지는.
2022. 05. 1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