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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2] 마을 한바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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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엄마아빠 2] 마을 한바퀴

 

멧숲에서 내려와 곁님은 엄마집으로 먼저 가고 나는 천천히 마을을 걷는다. 목골에서 개울을 따라 걷는다. 나즈막하던 시내가 길을 닦으면서 높고 좁다. 이 시냇물에서 고기를 잡고 징검돌을 건너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물구경을 했다. 성조네 집을 지난다. 우리가 모여 놀던 아랫방이 사라지고 상추밭이 되었다. 낯선 사람이 자전거를 세운다. 깔끔하고 흙이 곱던 마당에 풀이 자라 빈집 같다. 대문은 없고 그물을 쳐놨다.

 

내가 태어났던 교회 앞 터를 올려다보고 모퉁이를 돌아 순이네 집 앞을 지난다. 대문은 활짝 열렸는데, 무슨 짐이 잔뜩 쌓이고 개 두 마리가 사납게 짖는다. 마당 가운데에 나무가 커다랗다. 마당을 가득 메워가는 나무에 발 디딜 틈 없어 보이는 짐으로 어떻게 드나들까. 개밥은 누가 줄까. 담쟁이가 담을 타고 빈 옆집까지 덮는다.

 

대문을 걸어 둔 흙담이 무너진 틈으로 빈집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이제는 집인지 숲인지 모르도록 풀이 우거졌다. 나는 이 골목을 지나다니면서 물을 길었다. 예전에 날마다 드나들던 우물이 어떻게 있는지 궁금했다. 종종걸음으로 우물을 찾아서 갔는데, 어느새 우물은 사라지고 마늘가게가 들어섰다. 이 곁에 새로 지은 옆집 마당도 풀이 자랐다. 담이 무너지고 어린 날 보러 오갔던 토끼집 자리에 담만 조금 남았다.

 

대문이 없는 집을 지나는데 할머니가 아궁이를 덮는다. 들어가 꾸벅 절을 했다. 아버지 이름을 대고 오빠 이름을 부르니 나를 알아본다. 커피 마시고 가라고 붙잡으신다. 마루에 앉아서 마당을 둘려본다. 뜨락이 옛모습 그대로이다. 창살문도 그대로이고 빗장이 있는 부엌도 그대로이다. 뒤뜰로 돌아가니 뒷간도 흙담도 그대로 있다. 이 마을에서 집을 고치거나 바꾸지 않은 딱 한 곳이다. 그러나 할머니 손길이 깔끔하게 닿았다. 뒷문으로 나가면 마당과 이어지는 밭이 어린 날에도 보기에 좋았다. 앞뜰 논에는 작약꽃이 여러 빛깔로 피었다. 차를 마시고 마지막 언덕집을 오른다.

 

언덕집 마당을 보니 발디딜 틈이 없이 풀을 말린다.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이 집에 친척이 사는 줄 알았는데 낯선 사람이 나온다. 여느 사람과 달라 보인다. 언덕 담이 사라지고 모과나무가 싹둑 잘렸다. 나무를 왜 잘랐는지 말을 걸어 보지만 알아듣지 못한다. 어린 날 우리 집 담을 넘어 오르던 길을 따라 다시 천천히 발을 딛고서 내려왔다. 이제는 우리 옛집 뒤안이다.

 

뒤안에서 윗집을 올려보니 내 키 두 곱이 넘는 담이자 둑을 돌로 높다랗게 쌓아놓았네. 그런데 그 높다란 돌이 쌓인 틈에서 모과나무가 자라는구나. 아무래도 마당과 돌둑이 모과나무를 견디지 못하는구나 싶어서 잘라냈으려나. 뒤안에서 올려다본 바로 뒷집 헛간도 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자리에 지었다. 어떻게 이 많은 나날을 견뎠을까. 돌로 쌓은 담이 이렇게 튼튼하구나.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선다. 앞집과 금을 그은 우리 집 흙담이 살갑다. 담에 얹어 놓은 기왓장이 바래었고 뒤틀렸다.

 

나중에 엄마한테 이 담은 우리 건지 앞집 건지 물었다. 반쯤은 우리가 쌓고 반은 앞집이 쌓은 담이란다. 대문 모퉁이에 수레가 들어오지 못해 앞집 땅을 조금 얻어서 그 열 곱으로 뒤쪽 우리 터를 앞집에 거저 주었다. 담 너머로 보니 집터 담이 그대로 있다. 서류로는 우리가 주고받은 기록이 남지 않았다. 앞집 아들이 저희네 마당을 파지 않고 우리 골목으로 난 물길로 같이 내자고 떼를 썼단다. 저희 땅을 거저 쓴다며 몰아부쳤단다. 앞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할머니까지 돌아가시면 누가 살필까. 아들이 저희 땅이라고 우기면 그쪽 땅이 된다.

 

곁님네 엄마집이 그렇다. 백 년 넘도록 다닌 골목인데 옆집에서 저희 땅이라고 빨간 깃대를 세워놨다. 언덕밭도 돌둑을 높이 쌓아 길을 막자 서류에는 길이 없어 나중에는 집이나 땅에 들어가지 못할 판이 되어 비싼 세금을 내고 땅을 팔았다. 길이 없어 빈집으로 된 옆집을 사들이고 뒷산을 사야 우리 집과 뒷밭으로 다닐 길이 난다. 뒷집 골목 지나 뒷밭에 다녔는데, 고창댁도 저희네 땅이라고 막았다.

 

엄마집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한 또래가 사라지면 떨어져 지낸 다음 또래는 예전 일을 낱낱이 알지 못한다. 뒷집에 처음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오고 같은 씨내림 집안만 살던 마을이 바뀐다. 옛모습 그대로 간직하던 할머니 집과 우리 뒷집 담과 돌둑만 옛모습을 잇고, 빈집은 풀이 차지한다.

 

사람이 있고 없고 손길이 닿고 안 닿고 살내음에 집이 잇고 망가지는가. 사람이 사는 땅에 빈집으로 두니 이내 풀꽃이 차지하는 모습을 보니 하나둘 마을을 떠나면 마을조차 사라질 듯하다. 나는 우리 집 대문을 따라 두 빈집과 옆집인 우리 한아비가 쓰던 빈집을 다 사들여서 뜰이나 밭으로 가꾸고 살면 좋겠다 싶다. 먹고살 만큼 된다면 참 살기 좋은 곳인데 떠나는 사람에 떠나갈 사람만 남았다.

 

2022. 05. 23.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