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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3]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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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엄마아빠 3] 어머니

 

마을을 한 바퀴 돌고 집에 들어왔다. 먼저 온 곁님이 어머니한테 “어버이날 다 댕겨 갔니껴?” 묻는다. 나는 부엌으로 들어가 밥솥을 열면서 “막내네 쌍둥이 많이 컸겠네” 물었다. 어머니가 벽을 한참 보더니 코를 훌쩍인다. 눈이 빨갛다.

 

막내네는 쌍둥이를 낳았다. 마흔 넘어서 짝을 만나 인공수정으로 아들 둘을 얻었다. 어머니는 어린이날에 두 손주 몫으로 십만 원을 보낸 일이 있다. 그러고 이틀 뒤 통장을 정리하고서야 막내가 돈을 부친 일을 알았단다. 돈을 보내놓고는 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 없더란다. 막내댁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아들인 막내도 똑같이 그런다고 섭섭하더란다. 어머니가 보낸 돈을 어버이날 도로 보낸 듯해서 언짢았단다.

 

어머니는 나이가 들수록 잘 우네. 어머니는 어버이날 돈을 받고 싶어서 보내지 않았다. 어버이날 ‘엄마 잘 있나?’ 전화 한 통 받고 싶은 마음뿐이란다. 다섯 가운데 가장 마음 쏟았던 막내는 장가가더니 어쩐지 어깨를 펴지 못하는지, 아이들 돌보느라 뒷전인지는 몰라도 목소리를 듣기도 힘들어 서운한가 보다. 그리고 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섭섭한 일이 뭔가 있다고 느낀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시고 난 뒤로 너그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잘 삐진다. 이래도 서운하고 저래도 섭섭한지 쉽게 운다. 예전 같으면 ‘다 나를 탓해라. 내가 다 받아줄게’ 했다. 꿋꿋해 보여도 속으로는 잘 해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집에 갈 적마다 ‘미희네 딸네들이 불난 집 다 치우고, 딸네들이 돈 내서 집을 짓는다’ ‘딸네들이 그렇게 잘 한다’ 는 말을 열 판도 더 들었다. 들을 적마다 마음이 거북했다. 오히려 시어머니는 도리어 우리한테 다 주려고 하는데, 우리 어머니는 아이들한테서 받고 싶어 했다.

 

나도 서른이 넘는 딸도 있는데 어머니 마음을 왜 모를까. 모자라도 바라지 않고 안으로 품고 내가 돈을 더 쓰면 저절로 우리한테 모이더라. 클 적에 들어간 땀과 들인 돈으로 따진다면 견줄 수 없다. 이제야 겨우 어버이날이라고 아이들한테서 조금 받는다. 벌어서 앞가림하기도 어려운 서울살이인 아이들이기에 뭘 바라지도 않는데.

 

어머니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팠겠지. 예전에 멀리 있는 자식들이 ‘차비 쓴다고 오지 말라고’ 하더니 이 말이 씨가 되었을까. 다들 삶이 바쁘다 보니, 바쁘다는 말 한마디에 더 바라지 않는 듯하다. 앞집은 나란히 빈집이고 풀이 껑충 자라 엉망이라고 말하니 마당에 있던 어머니가 또 물끄러미 바라본다. “내가 없으면 이 집 풀은 누가 뽑고 집도 사라지는 일이 가만히 생각하니 걱정이다” 하면서 또 눈이 빨개진다. 여든이 넘으니 어머니도 떠날 생각이 문득 드나 보다.

 

2022.05. 3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