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5] 손질
집을 나서는데 눈물이 나려고 한다. 아직 가게에서 일할 사람을 못 찾았다. 가게에 들어서면 몇 가지 걸레부터 들고 가방을 둔다. 하루 쉰 날은 나물 손질이 많다. 잘라 놓은 양배추가 하나뿐이다. 통으로 둔 양배추 잎이 누렇다. 마르고 뜬 잎을 떼어내고 한 통을 넷으로 쪼갠다. 손님이 왔다. 칼을 내려놓고 뛰어갔다. 자른 양배추를 둘둘 감는다. 손님이 왔다. 또 뛰어가서 값을 치러 준다.
이제 긴 접시에 담아 놓은 쪽을 손본다. 늘 오른쪽부터 다듬지만, 다듬어서 가장 티가 나는 나물, 다시 말하면 가장 시들한 나물부터 손질한다. 양배추 다음은 언제나 실파를 손질한다. 누렇게 뜬 끝을 떼고 줄기가 누렇게 뜨는 잎을 떼어낸다. 손님이 왔다. 또 뛰어갔다. 다듬은 실파를 끝을 가지런히 해서 튀어나온 뿌리를 자르고 다시 그릇에 담는다.
이제 쑥갓을 꺼냈다. 두 개는 묵어서 누렇게 뜨고 시들었다. 뒤로 빼놓는다. 집에 갖고 갈 참이다. 나머지는 비닐을 뜯어내고 시들한 잎을 떼고 물을 뿌린다. 다른 쑥갓을 손질하고 물을 뿌린다. 다 다듬는 사이 물을 머금은 쑥갓은 잎이 살아난다. 나물 가운데 쑥갓은 손길이 닿는 만큼 티가 난다. 뿌리를 떠나온 이 나물도 손길을 받고 싶어 할까.
부추는 쉽게 무른다. 양상추는 칼이 닿인 자리와 뜯어낸 잎이 빨갛게 바뀐다. 대파를 둘 다듬어 비닐에 담고 깐파를 꺼내 시든 끝을 자르고 먼저 깐 파가 위로 오도록 둔다. 미나리는 잎이 누렇게 떴다. 입을 잘라내고 줄기만 그릇에 담았다. 단배추는 노란 잎 하나만 떼고, 취나물을 다듬는다. 넷인데 다듬으니깐 세 봉지가 나왔다. 모두 무게를 달아 나눈다. 이번에는 청경채를 다듬는다. 비닐에는 물기가 차고 누렇게 떴다. 모두 꺼내 뜨는 잎을 떼고 그릇에 담는다. 비닐은 물기가 많아 지저분하다. 열 꾸러미였는데 다섯 꾸러미로 줄어든다. 다듬어 놓으니 조금은 개운하다.
나물 손질을 한 지 두 해가 넘는다. 일꾼이 갑자기 그만둔 바람에 돌림앓이가 돌던 때부터 도맡았다. 다듬는 일이 더디었다. 새로 온 물건을 싸는 일도 더디었다. 아직 엉성했다. 랩을 감을 줄도 모르고 파나 부추는 찬찬한 손길이 있어야 하는데, 잘 안 되어 속이 터지는 줄 알았다. 이제는 손놀림이 익고 무얼 먼저 하고 무얼 나중에 해야 하는지 머릿속에 착착 뜬다. 물건이 많이 안 온 날은 손질하고 싸는데 두세 시간이면 된다. 처음에는 다섯 시간이 걸렸다. 앉지도 못하고 다리는 당기고 발바닥이 아프니 서기도 힘들었다. 안 해 보던 일이라서 고단했다. 집에 오면 쓰러져 잠만 잤다. 앞날이 캄캄했다. 일에 치여서 일만 하다가 아까운 하루가 다 간다는 생각에 마음으로 내내 울었다.
오늘이 그랬다. 한두 해 곱게 일했다. 계산원 일꾼이 떡하니 자리를 맡아주고 내가 없는 날에는 손질까지 하고 차분했다. 직원이 아무 탈 없이 오래 일해도 걱정이 밀려 온다. 이런 때가 왔으니 또 한바탕 고단하겠거니 여긴다. 그 일꾼이 나간 지 여섯 달이 되는데 그 사이 몇이나 바뀌었다. 일을 갈켜 놓으면 나가고 이건 이래서 그렇고 저건 저래서 마음에 안 들고 우리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지는 못한다. 이만큼 흔들었으니 좋은 일꾼이 오겠구나 여기는데, 이제는 일할 사람이 없다. 이 일이 힘들다는 줄 안다. 하루삯(시급)은 많고 장사는 떨어지고 둘이서 하지도 못하고 남 손을 빌려야 돌아가는 일인지라 알림을 해도 사람이 안 온다. 이제 며칠 있으면 대학생 방학이 있으니 학생 일꾼이 오려나 기다린다. 학생이 오히려 말귀를 잘 알아듣고 잘 지켜주더라.
뛰어다니며 손질을 했더니 벌써 발바닥이 따끔하다. 바닥이 아프고 몸은 처진다. 그런데도 감자 상자를 사 왔길래, 감자를 담는다. 시골서 캐온 감자를 가장 작은 것 가운데 것 큰 것으로 나누고 상자에 담았다. 상자를 하나하나 접어서 담는다. 두 상자를 옮겨 담고서야 점심을 먹는다. 손질하고 꾸리는 일이 바빠서 나는 밥을 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밥 짓는 틈에 일을 해야 내 몸이 버틴다.
손이 빨라야 일찍 끝낸다. 빨리 끝내야 발바닥이 쉰다. 두 사람 일을 이렇게 뛰어다니면서 며칠 했더니 꼬리뼈가 아프다. 넘어져서 금이 간 자리가 이런 날 더 아프다. 오늘은 조금 거드는 분이 도와주어서 여섯 시에 집에 올 일을 네 시에 왔다. 아침부터 그때까지 일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들은 책상맡에 앉고, 나는 서서 온몸으로 일을 한다. 다리가 아프거나 몸이 여린 사람은 이 일을 못한다. 힘든 하루이지만 그래도 좋기도 하다.
내가 다듬어서 깨끗하게 펼쳐 놓으면 이 애들이 웃는 듯하다. 손질을 못 받아 시든 잎은 울 듯한 얼굴이 보인다. 다듬으면 다듬을수록 값을 내려야 한다. 그렇지만 적은 돈이라도 내가 손질한 나물이 팔리면 즐겁더라. 이 애들이 사람 입을 즐겁게 하니 고맙구나, 더 시들지 않고 시집을 보내서 마음이 놓인달까. 이러니 힘들어도 버티는지 모른다. 내가 풀꽃나무를 좋아하기에 시든 나물과 얘기를 하고 새로 온 나물과 이야기를 한다. 내가 마음으로 말을 하면 꼭 알아듣는구나 싶도록 싱싱하게 살아난다. 나물을 손질하는 재미가 있다. 그래도 힘들기는 힘드니, 어서 새 일꾼이 와서 내 짐을 덜어 주면 좋겠다. 이러다가 잠보가 될까 봐.
2022. 06. 2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