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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8] 심부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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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8] 심부름

 

부엌종이가 똑 떨어졌다. 뒤쪽에 있나 싶어 가니 없다. 지하실에 있는데 가지러 가지 못한다. 아침 일꾼이 없어 자리를 비우지 못한다. 이따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자니 그래서, 신문을 손바닥 크기로 잘랐다. 그릇에 올리고 버섯을 담는데. 마침 상자 할아버지가 왔다. 얼음 담는 가방을 하나 달라는데 지하실에 있다. 가지러 가지 못한다.

 

“할배가 찾아 보실래요?”

“어디 있는데?”

“이쪽 계단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사무실 자리 쪽에 있어요”

“열쇠는 어딧노?”

“뒤쪽 못에 걸어 두었어요. 자물쇠는 문밖 상자에 올려두세요”

 

내려간 지 한참 지나서야 할아버지가 올라왔다. 찾은 가방이 둘 있어 하나 갖고 왔다. “가방이 뭐 이렇노?” 한다. “어디 함 봐요” 나도 처음 본다. 배낭처럼 생겼다. 지퍼를 닫고 등에 멜 수도 있고 손잡이를 들어도 되는 가방이네. 어디 놀러 간다는데 맥주라도 넣는가. 무거울 텐데 어깨에 메고 다니면 될 듯하다.

 

“할배요, 부엌종이는요?”

“또 내려갔다 올게. 근데 어떻게 생긴 거고?”

“동그랗고 분홍 비닐에 싸였어요.”

 

지하실에 내려간 지 또 한참 지났다. 둘만 갖고 오라고 했는데 스무 개 든 뭉치를 다 들고 왔다. 자리가 비좁아 둘 곳이 마땅찮다고 했더니, “지하실에 갖다 놓을까” 한다. 내 둘 꺼내고 할아버지 둘 주고 나머지를 지하에 갖고 내려갔다. 할아버지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가방 얻고 키친타올도 얻어 좋아라 하신다.

 

할아버지는 우리 가게 뒷문을 잠그고 열고 한다. 가게에서 나오는 빈 상자를 대문 앞에 던져 놓으면 차곡차곡 따서 쌓고, 종이는 수레에 싣고 가고 쓰레기와 재활용은 따로 담아서 싹 치우고 저녁에 대문 닫으러 올 적에 문밖에 내다 놓는다. 비로 쓸기도 하고 온갖 뒷일을 한다.

 

내가 이쪽으로 처음 왔을 적에는 병원에서 막 나왔다. 목발을 짚고 일곱 시에 나와 문을 열었다. 그때도 일꾼이 없어 석 달을 휠체어 타다가 목발을 짚을 적에는 걷기 힘들었다. 차에 내리면 곁일하는 학생이 내 가방을 내려주고 갈 적에도 실어주고 했다. 그런 내가 손이 모자라서 문을 열어야 하는데, 1월이라 날은 춥고 문을 열어야 하는 곳이 열 군데도 넘어서 나한테는 버거웠다. 그때 할배가 아침 일찍 나와서 먼저 기다리다가 내가 자물쇠를 풀면 할아버지가 문을 다 열어 주고 불을 켜 주었다. 옆문은 위로 올려야 하는데 목발 짚는 나로서는 좀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내가 해달라고 하면 아버지처럼 해주었다.

 

지하실에는 몇 걸음 들어가야 불이 저절로 켜진다. 할아버지는 늘 뒷문 쪽으로 큰 계단으로 들어오면 밝다. 반대쪽으로 들어가면 다른 불을 켜는 똑딱이까지 멀기에 앞이 하나도 안 보였다고 한다. 주머니에서 까만안경을 꺼내신다. 할아버지가 눈을 수술하며 맞춘 안경이라고 한다. 이 자리에서 벌써 일곱 해가 되었으니, 할아버지도 이제 많이 늙었다.

 

할아버지가 수술할 적에 한 이레를 못 오셨다. 이틀만 지나도 대문 앞에는 상자가 잔뜩 쌓였다. 납작하게 따서 쌓지 않고 빈통 그대로 던졌으니 무척 높았다. 나도 뜯고 곁님도 뜯어 차곡차곡 쌓아 보지만 큰일이었다. 며칠 버티다 할아버지한테 전화했더니, 다른 사람을 알려주었다. 할아버지 빈자리가 그렇게 큰 줄 몰랐다. 우리 일꾼도 쉽게 찾지 못하는데, 할아버지가 잘못된다면 참말 큰일이지 싶다. 우리 일이나 할아버지 일이나 남들이 꺼린다. 요즘은 힘든 일을 할 사람이 없다. 할아버지 또래가 사라지면 이제는 일할 사람이 더 없다. 누구는 해야 하는데도. 이제 우리 일도 앞날이 꼬리를 물고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인다.


2022. 07.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