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0] 소나기
소나기가 쏟아진다면 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감기 들지 않을 만큼 소낙비 실컷 맞고 싶다. 그렇지만 소나기처럼 쏟아내는 말은 실컷 들어서 이제는 그만 비껴가고 싶다. 시골로 가는 길에 소낙비가 내렸다. 곁님 입에서도 소낙비가 쏟아졌다.
둘 다 바빴다. 내가 먼저 집에 왔다. 문 앞에는 출판계약서가 왔다. 발간신청일이 며칠 남지 않아 가슴을 졸이며 기다렸다. 몇 가지 적고 두 종이를 붙여서 가운데 도장을 찍고 스캔을 떴다. 서류에 이것저것을 적었다. 다시 훑어보니 몇 가지 빠졌다. 글을 발표한 날짜를 적어야 하는데, 가나다로 되어서 찾기가 번거롭다. 시골집으로 나설 때까지 다 해낼까, 걱정하며 서둘렀다.
차를 타고 가면서, “나 집 와서 얼마나 바빴는지 알아요? 날짜 찾아가며 그 많은 건수를 시간 안에 마치려고 혼”났다고 하니깐 “지금 살림살이가 어떤 줄 알고 큰돈 들여 책 내는 사람이 어디 있나”고 짜증 낸다. 이렇게 나를 조마조마하게 말할 때면 할 말이 없고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런데 오 분 안 되어서 “내가 보이싱 피싱 당하듯이 대구에도 당한 사람 많다고 하네. 삼억 넘게 당한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는 말을 듣는 순간 ‘이 무슨 동문서답이지’ 하다가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돈 많으면 당해도 싸지.” 하고 나도 모르게 퍼부었더니 곁님이 입을 다물었다.
또 얼마 안 가서 아들한테 전화한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네가 온다고 기다릴 텐데, 전화나 해라”고 하는 말을 아들이 아빠가 성난 줄 눈치채고 ‘이제 일어났다고’ 잠이 덜 깬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데, “같이 가면 얼마나 좋노. 알았다. 아빠 할머니 집 가기 바쁘다 끊어” 한다. 아들이 따라나서지 않아서 그 화살이 내게 온 줄 나도 눈치챘다.
아들이 방학을 하고 왔는데, 오늘 따라 저녁에 일하는 아주머니가 바쁜 일로 못 나온다고 했다. 마침 집에 온 아들이 밤늦도록 일했다. “집에 와서 쉬고 싶었는데 일하라 하고, 친구 만나려고 했는데 시골 가자” 한다면서 투덜거렸다. 아무리 깨워도 눈뜰 생각을 안 하길래, 아 안 가고 싶구나. 안 그러면 갈 아이인데 많이 힘들었구나. 쉬도록 두자고 곁님한테 말했는데도 짜증이 풀리지 않았다. 나는 눈을 감고 자는 척한다. 두 사람이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을 즈음, 소낙비가 내렸다.
소낙비가 창문을 세차게 때렸다. 마른 잎사귀가 부스럭거리듯 마른 소리를 냈다. 유리창이 아플까 비가 아플까 한참 서로 맞고 받고 하는 빗줄기 소리에 눈을 떴다. 차츰 비가 줄더니 군위를 지나서는 바닥이 젖지 않았다. 마치 둘이 너무 고요히 있어 비가 소리내어 우리 둘을 풀어 주는 듯했다.
둘 다 비를 좋아한다. 곁님도 비가 오면 빗길을 달리고 싶어 하고 멧골에 가고 싶어 한다. 나는 빗소리가 마냥 좋고 하늘에서 땅으로 흐르는 물길에 홀리듯 마음이 붕 뜬다. 그리고 가라앉은 마음 밑바닥까지 내려다본다. 비가 내려주어서, 짜증이 난 말이 있어, 둘은 쓸데없는 말씨름을 멈추었다. 한마디 심술이 섞인 말을 풀기까지 그 조용한 틈새는 오히려 아늑하고 익숙하다. 피붙이를 만나 밥을 먹고 밤늦게 돌아오는 길, 집에 다 와 갈 무렵에서야 아무 일 없듯이 말을 꺼내고 나도 받아주었다. 돌아보니 소나기가 우리 마음을 씻겨 주는 듯하다.
2022. 07.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