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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13] 옻골마을 뒷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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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3] 옻골마을 뒷산

 

풀이 돋고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을 넘어 옻골마을에 들어선다. 길가 밭에는 살구가 노랗게 익어 가고 자두가 발갛게 익어 간다. 가뭄이어서 그런가, 자두알이 작다. 마을로 들지 않고 숲길로 든다. 숲에 참나무가 많다. 나무 틈에 살구가 노랗게 익었다. 지팡이로 가지를 당겨 살구를 딴다. 작지만 맛이 달다. 몇 알 더 딴다. 살구씨는 나무 쪽으로 던졌다.

 

조금 걸어서 들어가니 싸리꽃이 곱게 피었다. 덩굴풀은 나무와 한몸으로 붙었다. 군데군데 잎이 돋았다. 이제 다리를 쉬려고 자리를 잡아 앉는다. 땅을 뒤덮은 향나무를 본다. 위로 뻗지 못하고 땅을 덮으며 뻗었네.

 

멧숲을 오르면 이 멧숲에는 어떤 나무가 많을까 두리번거린다. 숲길은 뿌리를 드러낸다. 비껴가면서 바닥을 보고 걷다가 고개를 든다. 가지에 목수건이 걸렸다. 누가 떨어트렸구나. 날이 더워서 손에 쥐고 가다가 놓쳤구나. 나무에 빨간 끈이 묶였다. 멧길을 오르는 사람들이 끈을 묶어 놓은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쓰러진 나무를 묶었다. 가지가 찢어진 곳에 네 군데를 끈으로 묶고 나무를 괴고 넘어지지 않게 했다. 너무 누워서 일어나지 못할 듯한데도 누가 이렇게 꼼꼼하게 묶었을까. 어쩐지 따뜻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바닥에 자귀나무꽃이 떨어졌다. 위를 올려다본다. 날이 저물면 작은 잎을 맞접고 붙어서 아침까지 잠을 자는 자귀나무구나. 꽃차례에 하얗고 복숭아빛을 닮은 꽃이 피었다. 옥수수 수염같은 꽃이 잔뜩 피었다. 촉촉하고 가는 수술이 이렇게 힘차게 뻗다니 놀랍다.

 

길가에 동글고 까만 똥이 있다. 누구 똥일까. 토끼일까. 조금 더 오르니 막 싹을 틔운 작은 싸리꽃이 풀 높이로 자라고, 잎이 넓은 어린 참나무도 자란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풀꽃나무가 용하다. 둘러봐도 큰 싸리나무가 없는데도 싸리꽃은 이 땅에서 고개를 내민다. 싸리꽃이 자라도록 바람이나 새가 부지런히 심어 놓았다.

 

거북바위에 오르고 밧줄을 잡고 내려와 너럭바위에 앉았다. 집에서 갖고 온 도시락을 먹는다. 바위에 쌓인 가랑잎은 흙이 되어 가고 풀이 자란다. 이렇게 풀이 흙을 쥐고 바위를 잡고 또 가랑잎이 쌓이면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는 터전을 잡을 테지. 말없이 떨어지고 고요히 살아숨쉬는 터전을 이룬다.

 

더 가 보니, 마루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 마루가 놓였다. 돗자리를 깔고 눈을 감고 누워 하늘바라기를 하면 시원할 듯하다. 이제 뾰족한 등성이를 따라 걷는다. 한참 걷다가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 높은 멧봉우리가 조금 앞서 오른 거북바위라니, 높다. 그 뒤로 이은 등성이가 우리가 걸어온 길이다. 다시 돌이 많다.

 

발치에 부처손이 피었다. 손을 오그리고 마른 잎이 더 많다. 깊은 숲에서나 봄직한 부처손이 발치에 있다. 이제 대암봉 푯말에 이른다. 판판한 땅에 나리꽃이 한 송이 피었다. 올라온 길로 내려가지 않고 고개를 넘어 빙 둘러서 내려간다. 큰 바위를 지나 밧줄을 잡고 내려간다.

 

나는 나무 밑에 앉아 한 시간쯤 가만히 있다 오고 싶었다. 작은 공책도 갖고 갔다. 무엇인가 떠오를까, 아니 떠올려야지. 내 말을 들은 곁님은 가던 길을 멈춘다. 돗자리를 꺼낸다. 나는 나무 밑에 앉았다. 초콜릿을 하나 먹으면서 바닥을 보았다. 아주 작은 개미가 이리저리 바쁘게 다닌다. 바람도 불지 않아 이 작은 몸짓으로 어디 가서 이슬을 받아먹을까. 바닥에 물을 부어 놓으면 연못처럼 먹겠다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개미가 바쁘다. 물을 보고는 달아난다. 물을 먹을 줄도 모르고 달아나듯 놀라서 가는 모습을 보니, 다니던 길을 나름대로 그어 놓았을지도 모르는데 아까까지 없던 물이 생겨서 놀랐는지 모른다. 저것들 몸짓으로 보면 댐 같은 물이다. 아, 보태 준다는 일이 개미한테는 괴롭히거나 놀래킨 일이로구나.

 

땅찔레꽃이 하얗게 피고 멧딸기도 어른 키보다 높이 자랐다. 몇 알 따먹는다. 내려오는 길에 곁님과 두더지 이야기를 했다. ‘두더지가 털이 있나?’ 묻는데, 나는 ‘털이 없다’고 했다. 두더지를 본 적이 없는데 어림잡아 말했다. 흙을 파기에 지렁이처럼 맨몸이라고 생각했다. 둘이서 이 말을 주고받은 지 몇 분 안 되어 두더지를 만났다. 두더지 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만히 엎드린다. 앞서던 곁님이 ‘두더지 털 있네’ 한다. 손이 투박하고 짧다. ‘어쩌다 죽었을까’ 혼잣말을 하는데 ‘늙어서 죽었지’ 한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나뭇가지를 찾았다. 두더지를 묻어 주려고 했다. 저만치 가던 곁님이 ‘가까이 가지 마라, 뭐 옮는다.’ 한다. ‘막대기로 잡으면 돼요’ 하니 ‘뱀이 먹게 그냥 두고 와’ 한다. 뱀이 이렇게 통통한 두더지가 입에 들어갈까, 속으로 생각하면서 두더지를 두고 와버렸다.

 

옻골 뒷산을 돌면서 풀꽃나무와 개미와 두더지를 본다. 개미는 이 숲이 얼마나 크다고 여길까, 우리 땅은 또 얼마나 크게 여길까. 살아가는 동안 얼마나 다녔을까. 아랑곳하지 않고 먹을거리를 찾는 작은 개미를 보니 생각이 많다. 땅속으로 들어가면 숨은 어떻게 쉴까. 두더지 삶을 보니 또 생각이 많다. 내 발에 밟힌 숨결은 또 얼마나 많을까. 숲에서 새가 노래하고 바람이 풀 한 포기를 쓰다듬고 가는 일이며 나무가 오래도록 살아온 자국을 껍질에 차곡차곡 쟁여놓은 모습 보니, 새삼 숲이 우리 삶을 쥐락펴락하는 열쇠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22.06.20.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