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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18] 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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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8] 숨통

 

신호등이 바뀌고 브레이크를 꽉 밟았는데 차가 부르르 떤다. 누가 앞에서 끌어당기는 듯 그대로 박차고 달릴 듯이 덜컹 멈칫 또 덜컹 멈칫하며 몸도 까딱까딱한다. 판을 보니 그림 하나에 노란불이 깜빡인다. 기어를 뒤로 당겨 N에 두지만 멈추지 않고 앞으로 밀어 P에 놓고 발을 떼어 보지만 덜컹덜컹한다. 뒷거울로 보니 마침 차가 안 온다. 바로 옆으로 옮겨 모퉁이 타이어 가게로 갔다. 바퀴가 말썽 나지 않았지만 아저씨는 알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도움을 바라는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앞서 손사래 친다. 이튿날 고치는 곳에 맡기자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깜빡이던 그림인데, 내렸다 타니 사라졌다.

 

이튿날 아침에 먼저 나간 곁님이 지하실에서 부른다. 시동 버튼을 짧게 눌러 판에 나오는 그림을 보고 앞뚜껑을 연다. 긴 핀을 빼서 물과 기름을 찍어 보지만 왜 그런지 까닭을 모른다. 하루 일손을 빨리 마치고 고치러 갔다. 손잡이 밑에 기계를 꽂아 차를 훑는다. ‘스로틀 바디’에 때가 끼었단다. ‘스로틀 바디’가 뭔지 물으니 엔진으로 들어가는 바람을 맞추는 길인데 먼지 때문에 길이 좁아서 바람이 제대로 들어가지 못한단다. 사람처럼 자동차도 숨통이 죄여서 헐떡거리느라 덜컹거린 셈이다.

 

내 몸에 있는 핏줄처럼 자동차 엔진이 굵고 가늘고 꼬부라지고 얽혔다. 내가 빨리 달리면 달릴수록 발을 더 밟고, 밟을수록 열리는 그곳에 바람이 듬뿍 들어가고 닫히고서 숨을 쉬어야 하는데, 문이 살짝 열려 온몸을 흔들며 숨 좀 쉬게 해달라고 덜컹거리며 알렸구나. 내가 밟을 적마다 억눌린 바람이 기름을 만나서 터지고, 이 힘으로 차가 굴러간다. 내가 마음껏 돌아다니게 하는 자동차도 바람이 어루만져야만 달릴 수 있구나. 바람처럼 구석구석 다니고 싶어 한숨짓는 마음도 이럴까.

 

지지난해 이어서 동서남쪽 끝자락 섬을 돌고 싶다. 그때처럼 길그림을 펼쳤다. 마음은 섬에 있다. 바다보다는 숲을 좋아했다. 밋밋한 바다를 보면 까마득하곤 했는데, 이제는 바다가 아득하지 않다. 바위에 부서지는 물거품처럼 바닷가 몽돌이나 모래가 하는 이야기를 듣는다. 밀려오고 터지는 그곳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하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붉은 노을이 바다로 갔다가 솟아나며 다시 붉게 물들이는 아침바다를 보고 싶다. 붉은 빛살이 남기고 가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내 자동차는 이름에 묶였다. 이웃 언니는 마음껏 다니려고 차를 제 이름으로 샀다. 곁님이 뒤질까 싫어서 검은상자(블랙박스)도 다 떼어 버렸단다. 그렇지만 나는 차만 몰다뿐이지 발목이 꽉 잡혔다. 차가 말썽이 나면 곁님한테 먼저 전화하는 버릇이 나오고, 보험이나 여러 가지까지 곁님 이름이다. 내가 다니는 곳마다 자취가 남고 기름을 넣거나 물건을 사고 먹는 일까지 카드를 쓰는 족족 자취가 남는다. 나는 이 삶이 익숙해서 굴레인 줄 느끼지 않다가, 이웃 언니 말을 듣고 보니 숨통이 막힌다.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새 차로 바꿀 적에는 내 이름으로 사고 싶다. 찻값을 어머니가 반 보태 주어서 그동안 참 잘 탔다. 나중에 홀가분히 다닐 적에는 어디에 있는 돈으로 갔느냐고 묻지도 않을 테고 내 마음대로 돈을 써도 쪽글 알림도 안 갈 테지. “그냥 어딜 좀 다녀올게, 어디로 바람 좀 쐬고 올게” 이쯤 말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쓸데없이 앉아서 나를 지켜본다는 생각도 안 할 테지. 다 고치기기를 기다리는 동안 이런저런 생각이 갈마든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자동차가 먼저 느끼고 내 숨통을 느꼈을까. 알림불을 잘 고쳐서 마음껏 나들이를 하라고 차가 거든 듯하다. 엊그제 산 듯한데 이 차도 어느덧 여덟 해가 되네. 다닌 거리를 셈하니 하루에 17km 달렸으니 이제부터 10km 더 달리자. 숨통 트이게.

 

2022. 08. 0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