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19] 잘 썼나?
이레 뒤에 책이 나온다. 내가 쓴 시를 모았다. 자랑하고 싶다. 잘했다고 해줄 만한 피붙이가 있을까 궁금하다. 둘레에 쪽글을 남기니 하나같이 “한 권 사면 될까?” 하고 묻는다. 우리 집에서도, 아이들도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 남이라 할 만한 먼 사람들은 “축하한다”거나 “잘 했다” 같은 말을 들어도, 우리 집에서는 바라기 어려운 듯싶다.
그래도 이 무덤덤한 사람들한테 빙긋빙긋 웃으면서 알린다. 스스로 슬쩍 자랑질까지 해본다. 작은오빠는 “응, 살게. 축하한다. 대박 났으면 좋겠다” 한다. “그래, 작은오빠야는 몇 권 사주나?” 하고 물었더니 “둘레에 책 좋아하는 이가 없어서 줄 데가 없는데?” 한다. 엄마한테도 “엄마는 책 많이 팔아 줘야 한대이, 엄마한테는 책 한 권이 아주 비싸대이.” 했더니, “야야, 내가 요즘 일을 나가지 않아 돈이 없다”고 짜는 소리를 한다. “엄마, 돈은 이럴 때 쓰라고 있대이.” 했더니 “그라마 한 권 사서 친구한테 줄까?” 하고 묻는다.
“잘 썼나?”
“잘 못 썼는데, 부끄럽데이. 내가 내 글을 스스로 잘 썼다고 어째 말하나. 그저 책을 읽어 주는 사람들이 잘 읽어 주면서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랄 뿐이지.”
글밥을 먹으며 산 사람은 아니지만, 글을 좋아해서 책을 꾸준히 읽어 왔고, 나도 글을 쓰자고 꿈꾸고 시라고 하는 글도 썼는데, 대뜸 “잘 썼나?” 하고 물으면 어쩐지 김이 빠진다. ‘아, 글은 잘 써야 하는가? 잘 쓰지 않은 글은 책으로 내면 안 되나? 나는 앞으로도 글을 그리 잘 쓸 듯하지는 않은데, 그러면 나는 책을 내지 말아야 하나?’ 나는 무얼 바라며 둘레에 알리고 물어보았을까. 그저 한 권을 사주겠다는 한마디를 하면좋을 텐데, ‘잘 썼나?’ 하고 묻기보다는 ‘잘 했네. 애썼네.’ 같은 짧은 말이면 좋겠는데.
엄마는 잘 써야 남한테 준다는 생각을 하는구나. 딸이 그토록 하고 싶던 글을 써서 드디어 책으로 내는데, 함께 좋아할 줄 모르는구나. 글을 잘 쓰지 못해도 딸이 낸 책이라고 무턱대고 산다는 말은 짜다.
문득 돌아보니, 우리 엄마가 나한테 무뚝뚝히 말하듯, 나도 우리 딸한테 이렇게 말했구나 싶다. 우리 딸이 힘들다는 말을 늘어놓을 적에, 나야말로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 싶다. 아마 우리 엄마처럼 그렇게 들렸을지 모른다. 작은 상을 받아도 엄마한테는 자랑인데, 우리 엄마는 “잘 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지만, 엄마 눈빛은 벌써 어딘가 앞서가 있다는 줄 늘 느끼곤 했다.
그렇다고 다른 어른한테 말하지도 못하겠고, 지지고 볶아도 그래도 미더운 사람은 곁님이 아닌가 싶다. 이 사람 또한 “잘 했다”는 말을 밖으로 꺼낼 줄은 모르지만, 그저 조용히 지켜봐 주는 일이 이 사람이 드러내는 마음이다. 우리 아이들도 내가 하는 일에 시큰둥하고 나만 들뜬다.
2022. 07. 19.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