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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21] 시집 보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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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1 - 시집 보따리

 

시집을 한 보따리 받았다. 그끄저께 모임이 있었다. 인천까지 멀기도 하고 곁님이 가지 말라고 했다. 아는 시인한테 내 몫으로 좀 받아 달라고 여쭈었다. 이분은 내가 어느시인협회에 들어오도록 다리도 놓아 주었다.

 

아는 시인 없는 나로서는 이분 발자취가 부럽다. 늘 넘치도록 온갖 시집을 그냥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을 적마다 부럽다. 너무 많이 받아서 귀찮다고 얘기하는데, 나도 귀찮을 만큼 누가 보내주는 시집을 받아 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얼결에 한 보따리를 받는다.

 

시집 보따리를 하나씩 펼쳐 보는데, 시인이 참 많구나. 이렇게나 시인이 많은데, 내가 쓰는 시가 끼어들 틈이 있으려나. 내가 내놓는 시집을 알아볼 눈이 있을까.

 

시집에 적힌 전화번호를 내 손전화로 하나씩 담아 놓는다. 얼굴조차 모르지만, 알음알이로 만나는 시인이 이렇게 늘어나는구나. 앞으로는 손을 꼽을 수 없을 수도 없도록 시인 이름을 알 수 있겠구나.

 

나는 어떤 글이나 시를 쓸 수 있을까. 나는 풀꽃나무를 보는 하루를, 멧골을 오르내리는 걸음을, 곁님하고 가게를 돌보는 살림을, 세 아이를 낳아서 키운 삶을 그려도 될까. 시집 보따리를 펴면, 내가 쓰는 글이나 시는 무척 수수해 보인다. 꾸밀 만한 삶이 없어 보이는 내 하루는 어떤 글이나 시가 될 만할까.

 

앞으로 가야 할 길은 잘 모른다. 내 글이나 시는 아무래도 낮하늘 구름이나 밤하늘 별처럼 흔한 이야기이다. 누가 구름이나 별을 하나하나 알아볼까. 요즘처럼 바쁜 나라에서 구름이나 별을 느긋이 살피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래도 나는 구름이나 별처럼 수수한 이야기를 쓴다. 구름은 누가 저를 바라보아 주지 않아도 흐르고, 별은 누가 저를 노래해 주지 않아도 밤하늘을 밝힌다. 내가 하는 모든 작은 말을 시로, 노래로 읽어야겠다. 노래가 구름에 있고, 글이 별자리에 있을 테니.

 

2022. 07. 07.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