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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22] 큰애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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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2] 큰애 생일

 

 

큰애가 팔월에 집에 온다고 한다.

 

“엄마하고 한 이틀 바람쐬러 가자.”

“어디로?”

“남쪽이나 서쪽 섬으로.”

“엄마 운전 솜씨 못 믿겠는걸.”

“탈나면 둘이 겪어 가면서 정도 내고 좋잖아.”

“왜 가려고 해?”

“니캉 좀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그러제.”

“이미 좁혀졌는데 뭘.”

“며칠 뒤 니 생일이네. 미리 축하해.”

“엄마는 한 번도 축하 안 해줬어.”

“무슨 소리야, 네 생일날 바빠서 그렇지 늦게라도 꼭 했는걸. 봐, 지난해도 했잖아.”

“근이 제대 일자는 기억하면서 내가 생일이라고 말해서 한 말이잖아. 손꼽아 제대 일자는 기억하면서 딸래미 생일은 모르고.”

 

아무래도 같이 가기 싫은갑다. 다른 사람은 잘 챙기지 않아도 제 생일은 챙겨 주기를 바라는구나. 뭔가 모르지만 꼬였구나. 반갑게 말하다가 끊을 적에는 말이 무겁다. 어린애도 아니고 말하기도 조심스럽다.

 

이 아이가 네 살 무렵이었을까. 둘째가 태어나고 동생을 귀여워했는데, 그때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 고개를 푹 숙였다. 내가 둘째를 감싸안은 사진마다 토라진 낯빛이 붉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큰아이 마음을 이제야 읽는다.

 

셋째는 아들이라고 아들하고 이뻐한다는 말도 가끔 듣는다. 한창 손길이 가는 동생인데 이뻐하면서도 엄마는 아들만 좋아한다는 말을 하면서 마음을 드러냈다. 무슨 이야기만 있으면 아들만 챙긴다고 하네. 서른이 넘었는데도 그러네. 그냥 넘어가려니 자꾸만 걱정스럽다.

 

“여보, 아무래도 큰애가 어린 날 동생이 태어나고 사랑이 빼앗겼다는 생각을 아직도 하나 봐요.”

“무슨 일 있었나?”

“지난해 지 생일 안 챙겨줬다고 하잖아요.”

“안 챙겨주지는 않았을 낀데.”

“아빠는 챙겼다고 하는데, 당신 지난해 용돈 보냈어요?”

“아니.”

“그러면 앞으로 나한테 이야기하고 내가 보내는 쪽으로 해요. 당신은 아들 보는 앞에서 나를 깔보는 말 좀 하지 말아요. 나를 우습게 보잖아요.”

“그러면 니가 십만 원 보내 줘라. 맛있는 거 사먹으라 하고.”

“알았어요..”

 

오늘이 그날이다. 깜빡 잘해서 잊을까 싶어 어제 낮에 전화했더니 나중에 하겠다는 알림이 뜬다. 기다려도 오지 않아서 일 마치는 시간 맞추어 전화했다. 목소리가 힘이 없다.

 

“내일 니 생일인데 십 만원 보낼 테니 계좌번호 찍어 봐라.”

“오, 예”

“잊을까 봐 미리 보내니 내일 맛있는 거 사먹어.”

“고맙슴다.”

“돈 준다니깐 목소리가 달라지네.”

 

어쩐지 목소리가 한껏 힘차게 올라간다. 그랬구나. 엄마가 아직도 챙겨 주기를 바라는구나. 돈 십만 원이 얼마나 큰돈이라고. 딸이 다시 깔깔 웃어서 마음이 놓인다. 이렇게 마음 살피며 애쓰는 줄 아이도 나중에는 알겠지. 생일인 오늘 아무런 말이 없으면 이내 섭섭할까 싶어 축하 글월을 띄웠다. 아빠도 축하해 주었다. 아빠는 “맛있는 거 사먹고 나한테 청구해라.” 하고 보낸단다. 좋아서 키득키득 웃는 닿소리를 쪽글로 날린다. 무엇이든 때를 놓치지 말고 말을 해야 할 때가 있구나. 고마워, 딸아.

 

2022. 07. 2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