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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23] 개구리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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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3] 개구리 소년

 

그제 와룡산엘 다녀왔는데 이 숲에서 사라진 아이들 이야기가 신문에 나왔다. 안동에도 와룡산이 있다. 나무와 풀이 우거지고 밤꽃이 한창 필 적에 그 밑으로 풀밭을 헤치며 올랐다. 오솔길에 바위가 하얗고 돌부리가 많다. 커다란 바위에 앉다가 까투리가 날아가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때도 와룡산이라는 이름이 무서웠고 여기 대구 와룡산도 그랬지만, 지난 봄날에 벚꽃이 아름답게 핀 숲을 본 뒤로 가볍게 올라야지 했다.

 

회화나무에 꽃이 푸릇푸릇 피고 길바닥은 잎이 쌓여 눈처럼 쌓였다. 대나무 숲을 지나니 건너 넓은 길로 사람들이 올라간다. 쓰러진 나무로 쌓은 계단이 이어진다. 가파르지는 않지만 곧고 계단으로 놓은 길이 조금 따분했다.

 

소나무하고 아까시나무가 웃자라 숲에 해가 덜 드는지 나무에 이끼가 낀다. 비가 오기도 하지만 하루 내린 비로 이끼가 끼지는 않겠지. 바닥에는 겨울에 떨군 가랑잎이 깔리고 사람이 다니는 길가로 어린나무를 심었다. 아직 내 팔뚝보다 가는 편백나무이다. 소나무와 아까시나무 자리에 심었다. 한 나무는 속이 다 비었는데도 아까시잎이 싱싱하고 꼬투리도 맺었다. 바람이라도 세차게 불면 버티기 어려워 보인다. 천천히 제 몸을 내어준다.

 

은행나무 곁에는 똘기가 떨어졌다. 은행알을 주워 깨물어 반으로 쪼갰다. 은행알은 둥근데 하얗고 사과 씨앗처럼 길쭉하다. 안에는 벌레가 먹었다. 아. 이 매운 풋열매에 새숨결이 자라는구나. 입맛을 못 느낄 만큼 쓴데 이 열매를 어떤 벌레가 먹을까. 매미노래가 온 숲을 울린다. 나무에는 매미가 벗은 껍데기가 가만히 붙었다. 이렇게 노래가 큰데 뻐꾸기 소리가 맑게 뚫고 나온다.

 

뒤따라오는 사람도 없고 둘뿐이라 나는 자꾸 멈추었다. 개구리 소년이 자꾸만 생각났다. 곁님은 이 산이 그 산인 줄을 모르지만 나는 집을 나설 적부터 그냥 깨림직했다.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숲을 더 살핀다. 이제는 처음 보는 새다. 크낙새 닮았다. 머리에 빨간 모자처럼 쓰고 부리가 내 손가락 세 마디쯤은 되어 보인다. 꽁지도 빨갛고 얼룩무늬 깃이다. 땅에 기어다니는 개미를 잡아먹는가. 발자국 소리에 날아갈까 멈추면서 더 가까이 다가갔다. 새는 그냥 하던 대로 먹이를 쪼아먹으면 안 될까. 어느새 날아가버렸다.

 

꽃이 없는 산도 있네. 덤불이 없어서 그럴까.  이 말이 끝나자마자 한 뿌리를 만난다. 으아리꽃이 하얗게 피었다. 이제 가파른 길을 다 올라오니, 어디서 왔는지 사람들이 이곳저곳에 앉아 쉰다. 아, 우리가 가장 가파른 길로 올랐구나, 돌아서 올라오는 길은 걷기 좋은 길이다. 사람을 보니 이제 마음이 놓인다. 우리는 사람들이 올라온 길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길 가운데에 꼭대기라고 빗돌이 있다. 내리막길로 학교 쪽으로 길이 나오며 빠질 생각을 했다. 어떤 아저씨는 두꺼운 서류 뭉치를 들고 오른다. 무슨 시험이 있는가 보다. 이제 학교 쪽 알림판을 보고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에도 쓰러진 나무를 잘라 차곡차곡 쌓았다. 이 길도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네.

 

학교가 보이고 두 쪽으로 길이 또 있지만 우리는 학교 쪽으로 갔다. 여기에 학교가 있구나. 이 학교 아이들하고 개구리 소년들이 얽혔으려나. 사람들이 다니기 좋은 길이지만 서른 해 앞서만 해도 숲길이 아직 없었을는지 모른다.

 

내가 갓 결혼을 할 때 이 소문이 떠돌았다. 아이를 낳고 학교에 다니는데도 아직도 사라진 아이를 찾지 못했다는 얘기가 텔레비전에서 나오고 사진이 돌아다녔다. 이런저런 꺼림한 소문이 나돌자 무서웠다. 그리고 아이를 잃은 어버이는 얼마나 애탈까도 걱정이었다. 우리 딸이 서른이 넘는데, 그때 이 산으로 간 아이들이 열 살쯤 되었다면 어느덧 마흔이 넘을 아이들인데, 아직도 사라진 까닭을 찾는다는 신문을 보니 또 무섭다.

 

이제 이 아이들이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신문에 난 사진을 보니 우리가 오른 산은 맞은쪽이다. 나무가 웃자라 해가 덜 들기도 하겠지만 숲이 축축하면 몸으로 살짝 느낀다. 숲이야 예전에 사람들이 싸움을 벌일 적에 피를 흘린 사람이 한둘이겠나. 그때 숱한 넋이 깃든 숲은 거의 안개가 끼고 햇살이 덜 든다. 숲을 자주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만큼 어떤 기운이 감돈다.

 

슬픔을 품은 숲을 거닐면 어쩐지 내 마음도 무겁다. 햇살이 듬뿍 드는 숲은 바람도 더 불어 주는가. 이 숲에도 새로 심은 편백나무로 나무갈이가 끝나면 햇살을 듬뿍 받겠지. 숲에는 이리저리 흩어진 나무나 떨어진 가랑잎이나 가랑잎 사이를 지나가는 작은 벌레들, 죽음과 같이 살아간다. 개구리 소년이라는 말에 몸을 움츠리고 숲은 아무 일 없듯이 매미는 울고 떠나고 새들은 맑은 소리를 내며 참으로 바지런히 살아간다. 숲이 살아가는 길을 보고 자꾸 들으면 참 많은 이야기가 흐르는 듯하다.

 

2022. 07. 2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