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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26] 감자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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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6] 감자눈

 

나물 손질을 마쳤다. 밥때가 훌쩍 지났다. 배가 고프니 손이 느리다. 어서 집에 가서 밥 먹어야지. 뒷자리를 추스르다가 까만 뚜껑을 연다. 감자가 싹이 났다. 넷씩 담은 감자를 뜯는다. 과일 깎는 칼끝을 거꾸로 잡는다. 노랗게 올라온 눈을 파낸다. 손으로 밀면 부러지지만 배꼽에 싹이 남아서 이내 삐죽 올라온다. 후벼 파고 다시 넷씩 담아 싼다.

 

작은 상자에 담아 놓은 감자에도 싹이 났다. 신문을 덮어 놓은 감자를 봉희 씨가 골라온다. 나는 신문에 부어서 눈을 따고, 봉희 씨는 상자에 부어서 눈을 딴다. 감자 하나에 눈이 많다. 움푹한 자리마다 눈이다. 햇감자가 나온 지 이제 두어 달쯤 될까. 감자에 벌써 싹이 났다. 둘은 감자싹을 파면서 수다를 떤다.

 

봉희 씨가 어제는 두 시쯤에 집에 갔다. 제사를 지냈다. 동서는 부침만 거들다가 방에 가서 눕고 거의 혼자 한 듯했다. 제주도에서 일하는 곁님 전화에 ‘이제는 당신 아버지 제사 못 지내겠다. 너무 힘들다’고 했단다. 시어머니하고 동서하고 시동생이 다 있는 자리에서 말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웃음이 났다. 넉살이 참 좋구나. 첫얼굴처럼 맑고 시원시원하다는 줄 느낀다.

 

이제 동생이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데 아직도 서툴러 유튜브를 보고 지낸다고 한다. 우리도 한 해에 두 차례가 있고 명절까지 네 판을 지내는데 늘 하나씩 잊는다. 어떤 날은 수박을 사 놓고도 올리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고기를 끼워 놓고도 잊는다. 명태포도 가끔 빠트리고, 지낼 적마다 어른한테 여쭌다고 말했다. 봉희 씨도 시어머니가 이것저것 알려주면 좋겠다는데, 먼저 떠난 이 제사에 입을 잘 열지 않는단다. 지내고는 어서 제 집으로 가면 좋겠는데, 가라고 쫓듯이 말해야 간단다.

 

감자에 싹이 이곳저곳에 난 것처럼 봉희 씨가 사람이 좋아 옆구리에서 사람싹이 돋는가. 동서네가 와서 이레씩 머물면 빨래와 밥도 다 해준다던데, 엄마처럼 언니처럼 건사해서 사람들이 붙는 듯하다. 제사 이야기에 감자눈을 다 땄다.

 

감자에 눈이 날 때면 싹을 떼는 일이 귀찮다. 그릇에 담아 두면 푸릇하게 바뀌어 검은 비닐을 덮어야 하고, 싹을 떼고 떼면 티가 나고 시들하다. 감자에 싹이 잘 나니 씨감자로 쓸 테지. 이 싹도 나처럼 벌써 눈을 뜨고 일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감자는 땅 밖을 나와 빛을 받으면 파릇하고 싹이 난 자리가 맵다고 들었다. 너무 차가운 곳에 두어도 좋지 않다고 들었다. 감자가 땅속에서 줄기 하나에 주렁주렁 열린다. 봉희 씨가 감자 줄기 같아 시집 식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서도 사이좋게 지내는 모습이 부럽다. 나는 하나뿐인 동서와 잘 지내고 싶은데 틈이 있다. 감자눈을 파낼 때는 내가 마음으로 도려낸 사람들이 문득 떠오른다.

 

2022. 08. 1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