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7] 과일바구니
택배가 왔다. 상자가 묵직하다. 부피가 이만큼 되는데 뭘까, 칭칭 감아 잘 뜯기지 않는다. 궁금하니깐 마음이 더 부산스럽다. 칼로 돌아가며 뜯으니 얇고 까끌한 분홍보자기가 나온다. 보자기가 곱다. 풀어서 뚜껑을 여니 과일이다.
누가 보냈지? 상자에 적힌 이름을 보니 작은딸 짝꿍(남자친구)이다. 한가위에 못 오겠구나 하고 어림한다. 상자에는 메론, 배, 사과, 태주, 자몽, 레드향, 보랏빛망고, 노란망고, 용과, 키위가 들었다. 키위 하나는 납작하게 터졌다. ‘내가 일하는 가게에 다 있는 과일인데 애먼 돈 쓰네’ 하는 생각이 퍼뜩 들지만, 그래도 들뜬다.
“덕이가 보냈네. 우리 가게에 과일 많은데 한가위라고 보내는가?”
“오옹”
“먹기 아깝다야”
“웅웅 한가위이라고 보냈다고 하네. 망고 맛있겠따”
“아직 야무니 니가 와서 먹어. 키위 하나는 터졌어”
“조아!!!! 헐지짱”
“배는 가운데 조금 썩은 거 보냈네. 장사꾼이 그렇지 뭐”
“아무래도 택배여서 그런가 보다”
“엄청 좋으네. 첨 받아 보아”
“그래 가게 과일이랑은 또 다르니까. 맨날 안 좋은 거만 먹자나”
“그러게 싱싱한 거 먹어 보네”
“웅웅”
“그나저나 너는 시집에 뭘 안 해도 되나?”
“나도 알아서 했지”
“뭐 보냈노? 우리가 할 일을 너희들이 다 하네”
“나두 과일 보냈엉. 엄마가 할 일이양?”
작은딸이 이제 어른이 다 되었네. 꼬박꼬박 챙겨 주네. 마음이 곱네. 예쁘다.
병원 앞에서 가게를 할 적에는 과일 바구니를 가끔 꾸렸다. 꽃집이 옆에 있어 커다란 바구니를 사서 파인애플도 담고 포도도 담아 더 푸짐했다. 아픈 사람이 파인애플을 깎아 먹기도 힘들 텐데 보기 좋으라고 사람들이 사가더라. 바구니값이 더 드니 팔아서 좋기는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받는 사람 마음을 이제야 알 듯하다. 먹지 않아도 기쁘고 보내 준 둘을 생각한다. 나도 이다음 우리 딸아이 짝꿍한테 챙겨 줘야지.
예전에는 고기도 등급이 높은 걸 사고 싱싱한 나물이며 과일을 사서 먹었다. 이러다가 가게를 꾸린 뒤로는 싱싱한 나물이나 과일은 목구멍에 넘어가지 않았다. 사람으로 본다면 암 환자 같은 썩고 곪고 시들은 아이들을 손질해서 먹었다. 시골에서 보내 준 나물조차도 한 푼이라도 팔아 보태고 싱싱할 적에 손님이 사가면 뿌듯하더라.
팔리지 않으면 과일이나 나물이 딱하더라. 우리 집을 도우려고 왔는데 사람들이 안 사가니 저는 얼마나 눈치 보일까. 싱싱하게 하려고 찬바람을 돌리고 골라내고 또 고르는 수고와 번거로움에 낯을 들지 못할지 모른다. 그러니 싱싱할 적에 사람들 눈에 잘 띄어 나가면 나도 뿌듯하다. 임자를 찾아가는 남새가 기쁘게 갈 때가 좋더라. 그냥 버려지면 아까워서 먹기도 하지만 이 아이들이 딱해서 우리가 먹는다. 오랜만에 탱탱한 과일을 먹는다.
2022. 09. 06.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