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28] 되새김질
문닫는 소리에 잠이 깼다. 한가위가 코밑이라 곁님은 시골로 떠났다. 친척 몇이 모여 무덤에 풀을 벤다. 그가 없으니깐 가게에 나가 봐야 한다. 시계를 맞추어도 일어나지 못하는데 문득 잠이 깼다. 혼자서는 어디 가지도 갈 곳도 마땅찮다는 생각이 일고, 같이 다닐 동무 하나 없다는 생각이 겹치자 잠이 확 깬다. 이대로 고히 자면 안 된다는 생각이 사로잡혀 벌떡 일어났다.
새끼손가락에 봉숭아물을 들여서 설거지를 미뤄 두었다. 그릇을 씻고 거름그물을 수세미로 씻어내고 물을 끓여 뜨거운 물을 부었다. 마른걸레를 적셔 아들이 쓰던 방을 닦고 마루도 닦고 부엌을 닦는다. 곁님이 날마다 청소기를 돌려서 바닥을 닦은 걸레가 깨끗하다. 마루하고 방을 닦을 적에는 내 마음도 닦는다.
내 나름대로 바쁘게 사느라 둘레가 들어오지 않았다. 불쑥 혼자인 듯하니 아득한 별빛 하나 없는 밤하늘에 떨어진 듯해 그저 막막하다. 지나간 일들도 잘 떠오르지 않고 보았던 영화를 다시 보는데도 반쯤 보고서야 본 줄 알고, 머리가 확 풀어지면 시렁에 꽂아두고 읽지 못한 책을 읽어야지 싶은데, 좀처럼 안 된다.
글은 나아지지 않고, 쓰는 글은 나한테는 애틋한 하루하루 삶이지만, 좋은 글줄 하나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흔하디흔한 부스러기로 딱지를 붙인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나는 삶을 놓치고 싶지 않다. 멋진 글처럼 뛰어난 사람들을 파헤치며 다가가는 글에는 나다운 내가 없다. 풀고 또 풀어서 목소리를 펼치는 글이라면 몇 줄 안 되어도, 덧바르거나 멋있다는 글보다 좋아한다.
내가 쓴 삶은 곱게 여기면서 어떨 적에는 시시콜콜 늘어놓는구나 싶어 이 글이 따분하기도 하다. 영화를 보아도 좋은 글을 옮겨적고,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대목도 밑줄을 긋거나 옮긴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아닌 것을 따라하는 나를 본다. 어서 글길이 나아져서 나도 책을 읽고서 뭔가 말(비평)을 하고 쓰기를 하면 한 걸음 나아가는 글로 설까. 어쩌면 이런 글은 수박 겉핥는 글일까. 한 사람 한 사람 삶이 다 다른데 한 사람이 쓰는 글처럼 짜맞추는 글이 멋있다고 여기는 요즘이라고 느낀다. 이런 물결에서 보면 나는 뒤떨어지는구나 싶고, 어쩌면 먼 뒷날에 보면, 내 삶을 고스란히 녹인 글로 보아주려나.
이름이 널리 알려지면 수수한 하루하루를 담은 글을 쓰더라도, 이런 글에서 삶을 풀어내고 헤아리는 사람들이 나타날 테지. 배움끈이 높아지고 많이 알아갈수록 멀어지는 마음을 이 나이에 들어서면서 돌아본다. 나처럼 혼자라는 생각이 들 적이면 더듬더듬 찾는다. 하는 일을 숨기기보다는 드러내고 보여주고 들려주면서 떳떳해야 할 마음으로, 이제는 부끄러움이란 허물을 벗어야겠다.
물걸레로 바닥을 거의 다 닦는다. 아무래도 흐트러진 내 마음을 닦고 싶어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바닥을 닦았는지 모른다. 바닥이 정갈하면 돼. 집에서 마룻바닥처럼, 땅에서 풀꽃나무가 자라는 흙바닥처럼, 우리가 사는 별을 덮는 바닷물처럼, 그저 바닥이면 돼.
2022. 09. 04.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