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0] 우체국
며칠 우체국에 들렸다. 일터 가는 길에 두 군데가 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은 어쩐지 딱딱하다. 책꾸러미 하나를 저울에 올리고 나머지 무게가 같다고 말해도 ‘올려 주세요’한다. 나는 ‘똑같아요’ 말했다. 팔을 뻗기 귀찮은가, 말하기가 더 번거로운가. 나도 모르게 발끈거린다. 그러다가 보내는 글자루에 적힌 이름을 생각하며 꾹 참는다. 세 판쯤 이런 일을 되풀이하자 입이 거칠어질 듯해서 일터 가까운 우체국을 들른다. 예전에는 우체국 일꾼이 스스로 저울에 올렸는데, 이제는 우표값을 내는 손님이 올리라 하면서 너무 딱딱하다.
일터 곁 우체국은 군말이 없이 전화번호나 주소를 쉽게 살펴준다. 저울에 하나를 올리고 같다고 하면, 슥 쳐다보고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우체국은 똑같은 우체국일 텐데, 왜 이곳하고 저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확 다를까.
어느 날, 집으로 돌아온 책꾸러미가 있다. 처음 우체국에 가져가서 책을 부칠 적에는 글자루(봉투)가 구겨지지 않게 가방에 얌전히 담아서 다루었다. 돌아온 꾸러미는 택배나 등기가 아닌 일반 우편요금으로 보냈는데, 두 이레만에 돌아온 책꾸러미는 너덜너덜 걸레가 되었다. 풀을 붙인 자리가 떨어지고, 옆이 터져서 책이 통째로 빠져나올 만큼 틈이 나고 귀퉁이가 찢어지고 터졌다. 돌아온 글자루를 보자마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가 부친 책을 받는 분이 이런 글자루로 받았다면 몹시 마음이 나쁠 듯하다.
먼 책집에서 책을 사면 으레 테이프로 친친 감아서 떼기가 힘들었는데, 왜 이렇게 친친 감나 하나도 몰랐다. 이러다가 비로소 깨닫는다. 내 책을 이웃님한테 보냈는데 어떤 일 탓에 나한테 돌아오는 모습을 보니, 우체국을 거쳐 이웃님 손에 닿기까지 거친 꼴을 치러내고 이겨내야 하는구나. 너덜너덜 걸레처럼 돌아온 책을 본 날부터, 나도 우체국에 가서 책을 부칠 적에는 테이프로 친친 감는다.
돌아온 시집은 주소를 다시 알아보고서 보내기도 하지만 몇은 다시 보내지 못한다. 책 안쪽에 받는이 이름을 적어 놓았기에 다른 사람을 줄 수 없다. 이런 책은 안쪽을 살살 잘라내어 아쉬운 대로 나눌 수 있다.
시집이 저 스스로 사람을 잘 찾아 가는 듯하다. 손과 발품을 보탰을 뿐 우체국에 들러서 이리저리 옮아가고 또 나누어 가고 편지함에 들어가까지 참 쉽잖은 길을 거치는 듯하다. 보내는 사람하고 받는 사람 사이에 끈이 안 닿으면 다시 내게 오는 듯했다. 돌아올 것은 돌아오게 마련인가. 잘 찾아간 책은 잘 읽었다는 이야기랑 함께 즐거운 마음으로 날아오고, 어떤 사람한테 간 책은 그분이 받았는지 잃어버렸는지 아무 말이 없어 걱정스럽다.
시집을 내기도 처음이고 보내기도 처음이다. 첫 시집이니 그럴 테지만 나는 내 첫 시집을 받고서 고맙다고 여쭙는 분을 만날 때면 고개를 절로 숙인다. 이 시집이 제대로 임자를 만났구나. 벌써 눈빛을 찍고 내게 새 이야기로 오는구나.
책을 처음으로 내고 보내면서 생각한다. 책 하나는 작고 가벼울 수 있을 텐데, 그래도 책을 받았다는 말 한 마디 짤막하게라도 쪽글로 띄워 주면 좋겠다. 축하인사를 억지로 받고 싶다는 마음은 아니다. 서로 잇는 이야기를 짧게라도 글줄에 담으면서 마음을 환하게 틔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손을 떠나 우체국에서 뿔뿔이 흩어진다. 내 안에서 떠돌던 말이 이렇게 집을 꾸려 책 하나로 보내고서야, 어쩐지 그동안 부끄럽던 마음이 조금은 두꺼워지는 듯하다. 몇 사람한테라도 한 줄이라도 따듯하게 읽히고 그분 책마루(서재)에서 쫓겨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2022. 08. 1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