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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31]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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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1] 목소리

 

돌개바람이 지나간 다음날 엄마한테 전화했다.

 

“비 피해는 …….”

“그래, 괴안타. 아랫마을에 일하러 왔다. 뭐라 카노… 왜 그러노?”

“갑자기 말이 안 나와 …….”

“잠 안 자고 너무 공부해서 그렇다”

 

말이 나오지 않아서 더듬거리는데 엄마는 너무 애쓴다고 하네. 옆에 누가 있는 듯하다. 어쩐 일인지 다른 사람 들으라는 딸 자랑하는 말이네. 삼십 초 넘기지도 못하고 끊는다.

 

목에 가는 털이 서로 부딪치듯 작게 떨리며 간질간질했다. 나오지 않았다. 기침으로 목을 가다듬고 살가죽을 당기지만 목에서 떨리며 소리를 막는다. 일어나 물을 마시지 않아서 더 그런가. 밤새 입을 꼭 다물고 자서 그런가. 일할 때는 말짱하다가 집에 와서 입을 다물어서 그런지 곁님이 전화하면 기침만 나고 말이 안 나온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이러다 목소리를 잃는가. 혼자서 ‘아아아아아’ 소리를 내지만 간질간질한 떨림이 사라질 때까지는 내지르지 못했다.

 

마침 집에 온 큰딸한테 말했더니, 큰딸이 유전자검사를 했단다.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받는데 발병률이 높은 암검사를 다섯 가지 해준대서 갑상선암을 받았다. 발병율이 99%라나. 어쩐다나. 가만 생각하니 우리 엄마가 갑상선 수술을 받았다. 내가 한때지만 목소리가 안 나오는 까닭이 갑상선 때문일까. 그렇다면 말을 자주 하고 목소리가 커서 걱정이고 내 목도 걱정이 된다.

 

갑상선은 나비를 닮았다는 글월을 봤다. 나비 눈 나비 발 나비 입처럼 목에 작은 구실이 있다고 나비 모습일까. 이 목소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목청이라고는 하지만 목으로 나오면 목소리가 되고 엉덩이로 나오면 방귀가 되겠지.

 

목소리에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나온다. 이 마음은 또 어디서 있다가 목소리에 실려 나오는가. 어떤 소리는 노래가 되어 웃고 즐겁게 해주고 또 어떤 소리는 축축하게 젖은 울음이 되고 흐느끼는 대로 목소리가 달라붙어 듣는 사람과 내는 사람 마음이 무겁다. 사랑할 때 나오는 목소리, 새들 노래, 강아지나 고양이는 다 다른 목소리가 나온다. 목소리에 입혀 나오는 말이 참인지 거짓말인지 감쪽같이 달라붙는다.

 

이 보이지 않는 목소리가 나왔다가 어디로 갈까. 내가 손가락으로 검은 자판을 두들겨도 소리가 나고 내 눈빛이 닿고 손이 닿고 발이 닿는 모든 것에 소리가 있다니. 숨결은 같이 느끼는구나. 살아서 숨쉬는 소리, 다 다른 소리, 소리는 사람이나 물건에 깃든 마음같다. 목구멍을 뚫고 혀를 가지고 놀고 입술을 가지고 노는 목소리가 내 몸을 입은 빛일까. 말짱할 적에는 느끼지 못하던 목소리가 막히니 소리 뿌리가 궁금하다. 때론 곱상하고 때론 거들먹거리고 가벼운 사람으로 탈바꿈하는 목소리, 늙지 않는 듯하다. 문득 내 입밖으로 나간 목소리를 어느 별나라에 차곡차곡 담아 두었다가 부르면 말빛을 타고 오는가 하고 생각해 본다. 쇠소리가 나지 않도록 물을 자주 마시고 안팎이 부딪치지 않도록 살펴야겠다.

 

2022. 09. 08.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