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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삶 33] 양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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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3] 양복

 

작은딸이 십이월에 시집간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 한가위에 아빠와 동생 양복을 사주겠다고 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울 텐데,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선물이라면서 지갑을 연다. 나는 두 사람한테 비싼옷 사지 말자고 했다. ㅇ에 모인 옷가게에서 싸게 파는 옷을 사자고 했다.

 

ㄱ에 들렀다. 큰딸이 나서서 옷을 고른다. 옷가게 지기도 고르고 몇 벌을 입었다 벗었다 드디어 맞는 옷을 찾는다. 파란빛이 도는 옷은 등판이 커 보인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다음해에 입기에는 덜 어울릴 듯하다. 파랗지도 까맣지도 않은 잿빛이 도는 까만빛이 몸에 착 붙는다. 옷을 입으니 잘 받는다.

 

처음 이 사람을 보았을 적에 입고 온 옷에 반했다. 잿빛인 짧은 웃옷에 파란 바지가 무척 어울렸다. 몸매가 날씬했다. 딸이 골라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선 모습을 보니 그때 모습이 오락가락한다. 아직 옷발이 잘 받는다. 열 해 앞서까지는 양복이 일옷이었다. 오랜만에 새 양복을 입는다. 빨간 넥타이도 고르고 웃옷도 고른다. 작은딸이 돈을 내고 나는 바람막이와 가벼운 바지를 고른다.

 

이제 아들 양복을 산다. 자리를 옮겨 젊은이 옷집으로 갔다. 아들은 어깨가 크고 허벅지도 크고 오리궁뎅이인데, 이를 감쪽같이 가리는 옷으로 입고 또 입는다. 양복은 좀 작은 듯 입는다는데 아들은 크게 입으려고 했다. 옷을 파는 사람이 제 옷을 입어 보면서 몸에 꼭 끼게 입는다고 말해 준다. 내가 보기에도 조금 크면 팔다리 움직이는데 나을 듯싶은데, 꼭 끼게 입네. 면접을 볼 적에도 입을 수 있는 밤빛으로 골랐다. 넥타이는 멜 줄 모르니 묶어 놓은 걸 사고 웃옷도 장만했다. 작은딸은 동생 양복은 생각보다 비싸다고 말한다.

 

곁님은 소매가 길고, 아들은 어깨와 엉덩이와 허벅지가 적다. 같은 크기에 어깨만 큰 옷, 허벅지만 큰 옷, 소매만 짧은 옷, 같은 치수가 몸에 따라 잘 나왔다. 옷을 미리 사서 아들한테 작지는 않을까. 신발은 앞이 뾰죡하니 발이 커 보인다고 뭉텅한 신발로 바꾼다. 신발은 우리가 사주고 양복값이 비싸 작은누나 돈을 쓰는 일로 미안해하네. 그러면서 한 벌 짝 빼입은 모습이 의젓하다.

 

작은딸이 사준 양복을 입고 식장에 들어가면 곁님이 눈물을 흘릴지 모른다. 아들은 작은누나한테 첫 양복을 얻어 입어 오래도록 마음에 남지 싶다. 남매 사이도 이때가 가장 좋은 때 같다. 하나하나 집안을 꾸리면 옷을 사주기 힘들다. 제 식구 챙겨야 하고 제 아이들이 더 자라면 아이들에 따라 흐르니, 다 같이 만나는 일이 줄어든다. 동생이 학생일 적에 누나가 해준 선물은 앞으로도 잊지 못하지 싶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동생을 거두는 작은딸이 갸륵하다. 동생한테 가장 마음을 얻을 때라서 베푸는 작은딸이 고맙다.

 

2022. 09. 11. 숲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