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달겨레소리 숲하루 글님 ]
[작은삶 34] 짜증
손톱 뿌리가 있는 한 마디가 거무데데하게 부풀고 살갗이 뜨겁고 따갑다. 아들이 꺼내준 얼음을 비닐에 담아 둘둘 감는다. 밥이 모자라서 얼린 밥을 데웠다. 살짝 묶은 비닐 틈으로 쏟아지는 뜨거운 김에 살갗이 익었다. 얼음이 다 녹자 얕은 컵에 얼음을 담고 물을 담았다. 손가락을 물에 담그는데 곁님이 전화했다. 아버님은 벌을 지킨다고 못 오신다. 말벌이 벌을 물고 날 적에 무거워 느리게 날 때 파리채로 잡아야 한다고 시어머니가 오신다고 했다. 삼촌만 온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이젠 가게 일이 내겐 힘들다. 목이 아프고 손마디 뼈가 튀어나와서 아프다. 아무래도 손마디가 바로 펼쳐지지 않는다. 내 나이쯤 되면 일을 가볍게 해야 하는데 일이 힘들어 스스로 울컥거리는 날이 잦다. 손도 데어 나물을 씻고 주걱으로 볶는 판에 달아오르니 덴 살갗이 아프다. 쌓아 놓은 설거지를 해서 포개 놓았는데 컵이 떨어져 조각났다. 방금 딸이 잔이 예쁘다고 하면서 커피를 마신 그 잔이다. 손을 많이 써야 하는데 어쩌다가 데고 컵이 떨어져 깨졌을까. 한꺼번에 이런 날이 잘 없는데 또 뭔 일이 일어나려나, 짜증은 왜 자꾸만 나는지. 그 일이 또 짜증이 난다.
식구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하는데 재미가 없다. 슬그머니 방에 들어와 영화를 보았다. 살짝 밖에 나가서 둘러보고 잠자리를 봐준다. 시어른이 오시면 안방 침대를 내드렸는데, 이제는 두 딸이 쓰고 어머님은 바닥에 이부자리를 마련했다. 카페트를 깔고 이불을 깔고 솜판을 깔고 얇은 이불을 펼쳐 놓고, 마루는 곁님과 시동생 이부자리, 작은 방은 아들이 차지했다. 마른 나뭇잎 부스러기가 앉은 자리에 떨어지고 입고 온 그대로 이불에 들어간다.
하룻밤 묵고 가시는데 곁님이 “엄마 차비 좀 줘야지” “...” 말을 못했다. 받아쳐야 하는데 “돈은 한 푼도 주지 않고서는 주라 하네” 하고 속으로 말하면서 봉투를 찾아 돈을 받아 넣어 드렸다. 드리는데 기쁘지 않았다. 돈을 주기 싫어서가 아닌데, 아무 말을 하지 않아 얼굴에 티가 나더라는 말을 들으니 더 언짢았다. 그게 아닌데. 내가 언짢은 까닭은 곁님이 돈을 갖고 있다는 일이고, 나는 달라고 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기가 싫었다. 한가위 때 두 딸한테 “나도 돈이 든다, 달마다 오만 원씩 보내라” 하는 말을 하려고 벼르고 말했지만 둘 다 징징 짠다. 이 일이 몹시 짜증났다.
다섯이 모처럼 차를 타고 가는데 딸이 놀린다. 아들이 “엄마 이번에는 시 이야기 안 했는걸” 건널목에서 나는 이쪽 식당에 전화하는데, “저기 식당이 찾았다.” 한다. “어디에?” 물었더니 “엄마는 영어 모르잖아.” “너는 말을 그렇게 하나, 엄마가 그렇게 우습나.” 말했다. 내가 묻는 건 식당이 안 보였는데 2층에 있다고 말해도 될 걸 얕본다. 아들 옷 입어 볼 적 다리가 아파 옆에 앉았더니, “냄새 나.” 하고는 일어서서 저쪽으로 간다. “빨아서 처음 입는데 무슨 냄새가 나?” 말끝마다 얄밉다. 너무나 얄밉다.
꽃 한 송이 사와서 엄마 책 낸 일을 축하해 주기를 바랐는데, “출판기념을 해야 주지” 하고 말하는 곁님이 더 얄미웠다. 글동무 몇이 출판을 축하해 주는데 내가 밥값을 내는데 잔소리가 무서워 다른 카드로 썼는데, 남 속도 모르고 내 마음도 모르고, 요즘 달리기에 푹 빠진 딸래미 운동비로 몇 달 끊어주고, 아들 용돈도 내가 다 보내는데 다달이 십만 원 씩 몰래 보낸다. 나 몰래 보내지 않기로 하고는 몰래 준다. 내 자리가 참으로 한심하고 놀림받는 듯했다. 나도 돈 쓸 일이 있는데 꾹 참는다. 열 해 만에 소식 준 스님도 만나고 싶고, 남쪽 섬으로 가고 싶고, 해돋이와 해넘이가 붉게 넘어가는 것도 보고 싶은데, 가자고 해도 가지 않고, 속이 터질 듯하다. 올 한가위는 짜증이 달덩이가 되었다. 무엇을 받고 싶은지, 돈이 가진 힘에 짓눌려 딸한테 내가 너무 볼품없다는 생각이 든 이틀이다. 아직 짜증난다.
2022. 09. 11. 숲하루